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누구나 애송하는 김소월의 산유화(山有花)란 시다. 이 시에서 산에 핀 꽃과 작자와의 거리를 ‘저만치’라 표현 하였는데 저만치란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일까?
우리는 일상적으로 쓰는 말인데도 따져 보면 애매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저만치’같은 말을 자주 듣고 또 스스럼없이 쓰고 있다. 초행인 시골길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물으면 대개 “한 두어 마장 더 가시오.”라든가 “한참 잊어버리고 가시오.”라고 답한다. 한 마장이란 본시 4킬로미터 미만의 거리를 두고 이르는 말이지만 이럴 경우, 한 나절은커녕 온종일을 걸어도 목적지에 도착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시간은 물론, 물건의 크기나 개수를 나타내는 말도 마찬가지다. ‘한참이 지났다’가 한없이 오랜 시간일 수도 있고, 하나, 둘, 셋과 같은 정확한 수사보다도 두서너, 너더댓, 대여섯과 같은 뭉뚱그린 수사법이 더 보편적으로 쓰인다.
정확하게 수치를 따지는 일은 한국인의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 지도 모른다. 이만하다, 저만하다, 얼추, 거의, 거지반 등의 대충 뭉뚱그린 어림셈이 오히려 우리 취향에 맞는 듯하다.
우리말 어림셈 중에 ‘고만고만하다.’란 표현이 있다. 도대체 얼마만한 크기가 고만고만한 것인가?
무 중에서 총각무는 본래 청각무가 변한 말이란다. 그런데 ‘청각’이 돌연 ‘총각’으로 변신한 데는 무의 크기가 총각의 그것?과 고만고만하다 하여 유추된 현상이라는 게다. 물론 이렇게 이름을 바꾸는 데는 무를 씻고 다듬는 여인들(특히 혼자 사는)의 역할이 컸으리라.
우리의 수치 관념이 고만고만한 작은 어림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큰 것은 하늘만큼 땅만큼 크고, 작은 것은 눈꼽이나 코딱지만큼 작다.
부모에게 용돈을 타낼 때도 정확한 액수는 말하지 않는 편이 예의에 맞는다. 그저 “돈 좀 주세요.”로 족하다. 이것이 바로 이심전심의 교통이요, 한국인 특유의 인정치의 교환아니겠는가!
이토록 어림셈만으로도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았던 옛날이 그립다. 이제 우리도 그만 따지고 저만치 물러서서 좀 여유를 가지고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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