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을 모르고 교정에 임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교정의 중요성을 외면하는 출판 행위는 반문화(反文化) 사업이라고 하겠다.
외국에서는, 한낱 잡지사가 오자 없는 책을 표방하여 현상금까지 걸고 있다는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한 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사전을 보면, '교정(校正)'은 '글자의 잘못된 것을 대조하여 바로잡는 것'을 말하고, '교정(校訂)'은 '출판물의 잘못된 글자는 물론 문구까지 바르게 고치는 것을 말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문자로는 뜻이나 모양이 달라서 그 차이를 쉽게 알 수가 있으나, 한글로 '교정'이라고 썼을 경우에는 구별할 재간이 없다.
옛날에는 교정(校正)을 '준(準)'이라 했고 교정하는 것을 '준 보다.'라고 했다.
예를 들면, 옛날 체육 교과서에 '여가'를 즐기는 운동'이 '여자를 즐기는 운동'으로 둔갑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교과서는 아니지만 '여자들의 '소방(消防)훈련'이 여자들의 '서방훈련'으로 둔갑한 일도 있었고, 이런 경우를 생각하면 하나의 오자(誤字)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글자 하나, 점 하나의 위력은 대단하다.
앞의 예문에서 '여자'의 '자'를 '가'로 고친다거나 '서방'의 '서'를 '소'로 고치는 것이 '교정(校正)'이다.
그러나, 다음 문장은 외견상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 같은데도 전부 뜯어 고쳐야 할 문장이다.
"뒷산에 뻐꾹새 우는 소리에, 흥부는 빈 제비집을 쳐다보며, 제비가 돌아오기를 고대하였습니다."(국교국어, 4-1, P76.1980)
제비가 오는 시기는 4월 중?하순이고, 뻐꾸기가 오는 시기는 5월 초순인데, 그 5월에도 제비가 오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것은 과학적 오류에 속하는 예문이라서, 생물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 오류를 발견하기 어렵다.
이런 오류까지 바로잡는 것이 곧 '교정(校訂)'이다. 그러니까 校正이나 校訂은 모두 인쇄물에서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작업상의 성질로 따지면 '校正'은 단순한 '바로잡기' 작업이고, '교정'은 '뜯어고치기' 작업이므로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校訂'은 '교열(校閱)'과 같은 뜻으로 쓸 수 있겠다.
'校閱' 역시 校正하면서 '글의 내용의 문제점이나 표현의 잘잘못 따위를 따져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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