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설사약'이란 낱말은 사전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국에 가서 '설사약'을 달라 했고, 약사들도 서슴없이 약을 주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신통한 일이었다.
이 때 사람들이 요구한 약이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인 '지사제(止瀉劑)'였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혹시 '대변(大便)이 순조롭게 나오지 않는 증세'인 '변비증(便秘症)'이었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도 있잖겠는가?'
그러니까 '지사제'는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일 뿐이지만, 한편으로는 '설사를 나게 하는 약'의 뜻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중(言重)들의 사용 실태를 반영해서 사전에 올린 것이 '설사제'이기 때문에 '지사제'와 '설사제'는 잘 구별해서 써야 겠다.
설사하는 환자에게 먹일 약을 사러 가서 대수롭잖게 "설사약 주세요!"했다가는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변비증이 있는 사람에게 먹일 약을 사러 가서 그랬을 때에도 똑같은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그러니까 문제 해결의 열쇠는 약을 필요로 하는 측에서는 '환자의 병증(병의 증세)'을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겠고, 의사나 약사는 환자의 병증을 확실하게 파악한 뒤에 처방이나 투약을 하면 되겠다.
설사약과 비슷한 예로 '두통약'이라는 말도 널리 쓰이고 있는 탓에 최근에는 그 세(勢)를 얻어 '머리가 아픈 증세에 먹는 약'이라는 설명을 달고 일부 사전에 오르기도 했다.(국어국립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
생길 만해서 생기고 사라질 만해서 사라지는 것이 말인 것을 생각하면 생자필멸(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음)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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