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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 사상 이끈 전북은 천주교 산실"

'호남지역의 천주교 설파' 주제로 강연한 김진소 신부

"사회규범이 '예'가 절대적인 기준이었던 성리학은 비상식적 논리였습니다. 의례를 두고 싸움을 일삼아 시대는 사회모순 해결로써 새로운 사상을 원했습니다. 조선사회에 문화와 사상에 대한 변동과 변화가 넓게는 호남, 좁게는 전라북도의 천주교를 통해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21일 국립전주박물관이 주최한 토요명사초청특강에서 '호남지역의 천주교 설파'를 주제로 강의한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는 1784년 한국교회 창설부터 1901년 신유박해를 전후한 초대교회시절 호남지방 신앙 공동체의 역사를 전했다.

 

김신부는 "임실, 순창에는 천주교 박해 때문에 버스가 한두번 다니는 곳에 숨어사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본당 신부때부터 그들을 보며 신앙설파 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경제적인 궁핍에서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까에 집중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 카톨릭대에 부임해 성경을 가르치면서 단순히 성경을 번역해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닐까 고민하게 됐다"며 "천주교 박해때 신자들이 천국과 지옥이란 단순논리에 혹해 죽은 것은 아니었다는 확신이 들어 신학사 자료를 찾는데 몰두했다"고 덧붙였다.

 

"신자들은 생명과 맞바꾸면서도 100리를 도망가고 족보를 버리면서도 성경은 가슴에 품고 피난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조선시대의 통치사상인 성리학은 학문과 문화가 정치도구화돼 글자 한 자, 말 한마디만 다르게 해도 안됐다"며 천주교 신앙활동이 순수한 종교문제임에도 탄압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김신부는 "주자가 정한 의식과 법도를 400여년이 지난 현실에 강요하는 것이 말과 사상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지키라는 근본정신은 바뀌지 않아도 처지에 따라 형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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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네 nane01@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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