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대(고려대 교수·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국립창극단의 5월 완창판소리는 송순섭 명창이 부른 <적벽가> 였다. 73세인 대명창의 네시간에 걸친 <적벽가> 완창을 지켜보기 위하여, 객석은 꽉 차고 극장은 열기로 그득하였다. 선생은 언제나 객석의 반응을 살피고는 다음의 소리를 이어간다. 객석에서의 박수소리야말로 자신의 소리에 대한 엄정한 평가라고 스스로 판단한다. 소리대목마다 혼신을 다 하니 중간에 추임새도 많지만 한 대목이 끝날 때마다 박수의 연속이었다. 어느 대목에선가 소리를 끝냈는데도 박수소리가 나오지 않자, "이번 소리는 좀 맘에 안드시오?"라고 청중을 향하여 귀여운 항변을 하였다. 적벽가> 적벽가>
소리판은 소리꾼과 관객의 협상 테이블이 되면서 점점 가열차진다. 소리꾼이 주는 것을 객석에서 받기도 하고, 객석에서 보내는 기운을 소리꾼이 받기도 한다. 소리판이 '군사서름타령'과 '자룡 활쏘는 대목'을 지나서, <적벽가> 가운데 가장 박진감 넘치는 '적벽대전' 대목에 이르렀다. 송명창은 오나라 수군의 불화살 공격에 의해 불붙는 조조의 군함을 그려낸다. 소리판의 관객도 조조의 선단에 불타오르는 모습으로 붉게 상기되었다. 수많은 조조 군사들이 상황의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해학적으로 죽어 나자빠진다. 송명창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 대목을 멋지게 연행하였다. 적벽가>
<적벽가> 에서 조조는 용렬하고 겁많은 지도자로 야유된다.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고, 최악의 전술을 구사하여 자신의 백만 군사를 몰살시킨다. 그리고 도망길에 오른 조조는 말을 거꾸로 타고 채찍질을 하는데, 말은 적진으로 향한다. 정욱이 "승상은 말을 거꾸로 타셨소"라고 가르쳐 주자, "언제 옳게 타겠느냐? 말 대가리를 뽑아다가 엉덩이에 박아라"고 이르는 데서 못난 지도자 조조에 대한 통쾌한 풍자와 야유가 절정에 이른다. 이 대목에서 박수가 가장 많이 터졌다. 적벽가>
이제 송순섭 명창의 절창인 '새타령'으로 넘어갈 차례이다. 송명창이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청중을 향해 말한다. "이제 '새타령' 부를 차례인데, 송순셉이 '새타령' 듣고 난 다음에 여러분이 다 가버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좀 쉬고 나와서, '새타령'부터 이어부르고 싶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시오?"라고 협상을 걸어왔다. 객석에서는 "지금 불러주세요", "지금 당장"을 연호했다. 그만큼 송명창의 새타령은 매혹적인 것이었다. 송명창은 "참말로 안가실라우? 그러면 지금 부르지요."라고 대답하며 "산천은 험준허고 수목은 총잡헌디"로 시작하는 '새타령'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감동적인 '새타령'이 끝나고, 송명창은 객석에 인사를 한 다음, 두 번째 휴식을 위하여 무대를 떠났다. 15분쯤 지났을까, 송명창이 고수 박근영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송명창은 좌중을 한번 휘둘러 본 다음에 말했다. "내가 아까 '새타령'을 부르고 난 다음에 쉬는 사이에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송순셉이가 부른 '새타령' 가운데서 젤로 못부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한 번 '새타령'을 부르려고 하는데,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명창은 스스로 자신의 소리에 만족하지 못하다면서 우리에게 재협상을 제안해왔다. 물론 객석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그렇게 해서 재협상이 쉽게 이루어지고, 우리는 송순섭 명창이 들려주는 그 멋진 '새타령'을 두 번 듣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네시간에 걸친 <적벽가> 완창을 한 대목도 빼지 않고 불러준 송명창에 대하여, 객석은 10분 동안의 기립박수로 그 예술에 한없는 존경심을 표했다. 적벽가>
유영대교수는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를 졸업했다. 문학박사. 우석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서울시 문화재 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유영대(고려대 교수·국립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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