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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희망의 전제조건은 신뢰와 통합 - 이길형

이길형(CBS 상무 겸 방송본부장)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올해 슬로건을 '당신이 희망입니다'로 정했다. 뉴스와 프로그램을 통해 가슴 벅차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많이 전하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가자는 취지에서이다. 이런 방송사의 슬로건이 아니더라도 개인이나 기업, 정부 할 것 없이 올해는 유난히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신년사의 내용도 '희망과 용기를 갖자, 위기를 극복하자'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산꼭대기에서 다짐대회를 열고, 희망풍선을 날려 보내는 행사도 곳곳에서 열렸다. 그만큼 처한 현실이 어둡고 절박하기 때문이리라. 오죽하면 대통령의 신년사 가운데 '위기'라는 단어가 29번 거론됐다는 것이 기사거리가 됐을까?

 

그런데 이렇게 너도나도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주위의 분위기는 어쩐지 시큰둥하고, 그저 희망사항쯤으로 보여 진다. 정말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찾기 힘들다. 어느 경제 전문가도 속 시원하게 장밋빛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안개상황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한 것은 분명한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TV로 중계방송 하듯 지켜본 전쟁터 같은 국회 현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조차 정반대가 돼버린 골이 깊어만 가는 이념적 갈등, 꼬여만 가는 남북의 모습,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 정치 현실을 바라보면서 과연 국민들의 가슴 속에 희망의 싹이 솟아오를 수 있을까? "1분 1초라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며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것을 대통령이 국민 앞에 다짐했지만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희망의 전제 조건은 신뢰와 통합이다. 상대방이 똑같기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배려하는 것은 비단 개인적인 관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찬반양론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사안일수록 의도적인 목적을 감추고 있지 않는 한 충분한 여론수렴과 설득이 상식이다. 소수의 몽니도 문제지만 다수의 포용이 전제되지 않으면 신뢰와 통합은 요원한 일이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문제를 둘러싼 극한 대립 속에서 자신에게 매우 비판적이었던 정적을 기용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국을 분열 위기에서 살려냈다.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서의 오바마 당선 연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통령으로서 내리는 결정이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지만 나는 항상 솔직하겠다. 견해가 일치하지 않을 때 여러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겠다. 반대하는 목소리일수록 더 열심히 듣겠다."

 

미국이라고 해서 우리보다 형편이 낳은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발원지인데다 첫 흑인 대통령으로서 언제라도 인종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 전 세계가 희망의 눈으로 오바마를 바라보는 이유가 바로 그의 신뢰와 포용 정신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이길형(CBS 상무 겸 방송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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