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은 전북을 세계로 이끄는 창…전주는 DNA 지켜라"
"2007년 예술의전당에 불이 났었지요. 그때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건축의 기술 덕분이었어요. 주 무대 네 면에서 각각 방화커튼이 내려오고 스모크 후드가 위로 열리면서 불길을 건물 밖으로 빼낼 수 있게 설계를 했었는데, 그 덕을 톡톡이 본거예요. 아마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불길이 객석으로 빠르게 번졌을 겁니다. 전당 건립 당시만 해도 이런 시설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논란이 있었는데, 안했으면 큰 일 날 뻔 했지요."
세계적인 건축가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67)의 작업실 마당에는 그가 설계한 '예술의전당' 설계 모형이 있었다. 축소된 모형의 특성상 복잡하고 오밀 조밀하게 보이는 예술의전당은 그에게 자랑이고 자부심인 듯 했다.
그의 작업실은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 고갯길 맨 윗쪽에 있다. 10년 전, 김교수는 100년된 한옥을 사서 아키반(ARCHIBAN)건축도시연구원을 만들었다. "내가 살면서 보존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연구원을 리모델링할때 일했던 목수들은 그후 주변의 한옥들을 고쳐나가는 데 참여했다.
매일 북촌 한옥마을을 오르내리는 그는 전주 한옥마을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옥이 모여있는 곳이긴 하지만 전주 특유의 한옥을 찾기는 어렵더군요."전주 한옥마을의 가치가 절하(?)되는 순간, 그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래도 전주는 좋아요. 왜 좋냐고 묻는다면 우리 어머니가 완산 전씨거든." 그래서 인터뷰는 일단 유쾌하게 시작됐다.
▲ 전라북도에는 자주 와보셨지요.
=그럼요. 예전에는 많이 갔었죠. 전주라는 도시가 좋아서 일부러 자고 오기도 했고, 한동안은 새만금때문에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함께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근래 10년 동안은 아파서 아무데도 가질 못했어요. (그는 암으로 투병중이다)
한국 도시들은 대체로 비문화적인데, 그래도 전주는 확실히 문화적인 도시입니다. 내가 언젠가 압구정동 주민들을 모아 놓고 지하나 옥외층에 도서관을 만들자고 했었어요.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자기네들은 모든 게 있다면서 더 필요한 것이 없다고 반대를 하더군요. 압구정동에는 책방이 없습니다. 자기네들은 스스로 잘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들이 참 안타까워요. 이곳에 비해 전주는 문화의 도시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듭니다. 아무 연고가 없이도 몇 개의 식당과 골동품상, 몇몇의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도시라면 정말 좋은 도시지요.
▲ 그동안 전주는 많이 변했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실때 전주라는 도시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도시의 가능성을 아무나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무지한 자들이 함부로 도시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죄예요. 정동영의원이 처음 당선되었을 때 나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정의원은 전주에 대하여 욕심이 있었고, 나도 전주에 대한 생각을 나름대로 얘기했지요. 그후에 전주에 초청되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을 하려고 내려간 날이 마침 전주 객사를 개방한 날이었어요.
나는 그날 내가 갖고 있던 전주에 대한 생각과 좋은 도시로 갈 수 있는 조건을 말했습니다. '전주에 대한 전체적인 큰 계획이 있어야 한다. 전주가 어떤 도시였고 지금은 어떤 도시인지, 전주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한 후에 종합적인 계획을 만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나도 전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하진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그림을 만들겠다'고 약속도 했었죠.
▲ 그 약속을 아직껏 못지키신 셈이군요.(웃음) 이전부터 교수님께서는 '창조'를 강조해오셨습니다. 낡은 도시와 새롭게 생겨나는 도시가 혼재된 현재의 환경에서 전주가 창조도시로 가기위해서는 어떤 길이 있을까요.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준비하며 그 전해에 '서울의 안'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경복궁에서 남대문 사이를 서울의 1번가로 만들자' 둘째,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를 역사보호 구역으로 지정하자' 셋째, '풍수지리학적으로 4대문 안의 내청룡에 해당하는 청계천을 복원하자' 넷째, '종로에서 남산 사이를 자연으로 이어 북한산 일대와 한강을 연결하자' 다섯째, '동대문에 디자인 산업단지를 만들자' 는 것이었습니다.
전주도 추상적인 구호 대신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 실행해야 합니다. 강력하게 보존해야한다는 말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 안은 적어도 3년 안에 어떤 성과든지 나타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도시와는 분명하게 다른 전주만의 디엔에이(DNA)를 지켜가는 것이겠지요.
▲ 새만금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새만금의 개발과 관련해 연구하셨고, 또 특별한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하셨지요.
=강현욱 전북도지사, 김완주 전주시장 재임 시절에 '새만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고 해서 만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벌써 4∼5년도 훨씬 더 된 이야기네요. 그 때쯤 내가 '대통령 선거에 새만금을 주쟁점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새만금이야 말로 대통령 될 사람의 자질을 검증하기에 좋은 이슈다'고 제안 했었습니다. 새만금 자체가 국정을 좌지우지할 대상은 아니지만 새만금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대한 철학은 대통령 자질을 검증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새만금은 우리나라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대상입니다.
사실은 새만금에 대한 글도 썼는데, 출판은 안했어요. 그 책을 보고 실행하기 보다는 단순히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죠.
▲2005년에 펴낸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창비)를 보면 우리나라의 많은 부분이 교수님께서 제안하신대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북의 경우 도시 연합의 개념을 적용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방의 도시들을 보면 농촌의 붕괴가 큰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소득이 높은 곳을 향해 이동하면서 급격히 도시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지요. 유럽의 도시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유럽은 대도시와 소도시 그리고 농촌이 서로 역할을 분담하지요. 이에 반해 우리는 모든 것을 자기 도시에서 한 번에 결판내려고 하니까 안되는 겁니다. 물론, 농촌이나 도시가 각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농촌에서의 삶이 갖는 근원적인 부분을 도시와 쉽게 네트워크 할 수 있게 해야해요.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도시와 농촌을 연결할 수 있는 통로는 오랫동안 일제시대 만들어진 신작로 말고는 없습니다. 고속도로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인터체인지를 제외한 작은 도시들은 지나가버리니 농촌은 더 변두리가 될 수 밖에요.
▲전북에는 전주를 비롯한 14개 시·군이 있습니다. 새만금 및 동부권 산악지대 등의 조건을 활용하여 도시 연합을 이루어내면 효율적인 발전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떨까요.
=전북의 작은 마을은 서울과 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광역 의미에서의 전북은 서울을 넘어 서남해안, 다시말하면 중국을 내다봐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백제는 중국하고 놀았죠. 만경강, 금강과 연결되고 다시 바다와 연결되는 새만금은 전북을 세계로 열리게하는 창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주목해야합니다.
▲ 앞으로의 도시는'농업시대에서 해양시대로 간다'는 분석을 하셨던데요.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세계의 대부분 도시들은 살아남기 위해 전 세계를 상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물류가 관건입니다. 물류비용을 가장 적게 들이는 것은 바다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모든 동력 중 가장 싼 것이 부력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원가를 적게 들이는 해안에 위치한 도시들은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부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 바로 중국 동부해안입니다. 이곳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가 어디입니까. 전라북도 아닙니까. 결국, 역사와 지리적인 면에서도 새만금은 세계에서 최고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교수님이 제안하신 '황해연합'은 흥미롭습니다. 현재의 여건에서도 그런 네크워크와 역할이 가능할까요.
=지금처럼 한 개의 구역이 작게 쪼개진 형태의 지방자치제에서는 어렵습니다. 하나의 유니트(unit)가 지금보다는 더 커야 자립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장기적으로는 전북과 충청남·북도는 금강 수계 중심으로 합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지리와 인문이 통합되어 자립가능한 지방 경제권을 이뤄내면 그것이 바로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겁니다. 전북과 충남·북, 그리고 중국의 일부 성이 연합을 이루면 서해와 롄윈강, 중국 횡단 철도 등을 통해 전주에서 유럽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중국의 롄윈강 쪽과 우리가 연합하면 전북 일원에 부족한 인구문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나는 새만금의 가능성으로 롄윈강을 본 겁니다.
▲그동안의 방조제 완공까지 과정만 보더라도 새만금은 진정으로 의미 있는 공간이 되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새만금과 비슷한 사례가 있나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조이데르해(海),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로지르는 네바강 네바만,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모세의 방벽 프로젝트를 들 수 있을겁니다. 이들은 새만금과 크기나 형상이 비슷합니다. 사실 새만금은 제방을 막음으로써 전라북도 땅이 됐지 만약 막지 않았다면 그냥 대한민국 땅이었을 겁니다.
여러 산업 중에서도 관광산업과 물류가 결합하면 시장이 형성됩니다. 전주를 비롯한 전북의 역사가 스토리가 되고 그것이 금강과 연계된다면 새만금에 중국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새만금은 원래 담수호를 만들기 위해서 시작한 사업이 아닙니까. 바다가 담수호가 되면 수많은 섬과 반도가 생겨납니다. 그것을 잘 아름답게 잘 가꾸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자칫 어리석은 자들이 조급하게 나서서 개발한다며 망치면 방법이 없어집니다. 나는 수많은 섬과 반도가 생겨난 다음에 바다와 갯벌과 내해가 어우러지는 토지를 만드는 것이 옳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창조도시에 관해 다시 묻고 싶습니다. 창조도시가 되려면 창조적 집단이 모이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사회구조에서는 지역에 사람을 모이게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창조적 인간들은 집단화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들끼리 만나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창조적 인간 보다는 창조적 인간군을 주목해야 합니다. 창조적 인간은 자연으로부터가 아닌 인간으로부터 얻어낸 것, 다시말하면 예술품이나 책, 미술 등으로부터 창조성을 얻습니다. 분명한 것은 창조적 인간들을 모이게 하는 공간이 대도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건을 잘 갖추면 창조적 인간들을 모을 수 있습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동인(動因)'입니다. 그러려면 누군가가 열정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자치단체장입니다.
인터뷰가 끝날즈음, 김교수에게 "왜 건축가가 되었냐"고 물었다. 그는 즉답을 피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암과 싸우며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 다시 태어나면 '수학자가 되어야지' 했어요. 내가 어렸을때부터 수학을 아주 잘했거든."
그 답의 이면을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어쨌든 그는 두 차례의 암수술을 이겨냈고, 여전히 열정적인 건축가로 살고 있다.
◆ 김석철 교수는
1943년 태어난 김석철교수는 1966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하고 이듬해 김수근건축연구소에 들어갔다. 1971년에는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의 모태가 된 김석철건축연구소를 설립했다.
21세기 도시선언 '메가리데(Megaride) 헌장' 기초 작업에 참여했으며 그 대표로 유엔 하비타트(HABITAT)에서 발표했다. 최근에는 인천의 밀라노디자인시티 마스터플래너와 남예멘의 옛 수도 아덴과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신도시 설계를 맡아 작업했다.
제1회 한국건축문화대상, 제1회 올해의 건축인상, 철탑산업훈장, 보관문화훈장, Antron Design Award 대상, 아시아건축상 금상,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명지대 석좌교수이자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으로 활동하며, 베네치아 건축대학·뉴욕 컬럼비아대학 건축대학원·베이징 칭화대학·충칭대학 객좌교수 등을 겸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자하라 주거단지, 예술의전당, 제주영화박물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이 있으며, 「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 「나는 멋진 집을 짓고 싶다」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등의 저서를 냈다.
대담= 김은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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