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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 하나는 가지자

임숙정(전주대 고전학연구소 연구원)

지난 24일 사촌 언니의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에 다녀왔다. 결혼식이라는 행사 자체가 워낙 정신없는 일이지만 거기에 오랜 만에 보는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로도 혼이 반쯤 나가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식을 기다리는데 대입 재수중인 사촌동생이 내 핸드폰을 보더니 "대체 누나는 언제 적 핸드폰을 아직 가지고 다니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 소리를 들은 고모는 "돈 못 벌면 그러는 거야." 라고 답변했다. 스마트폰 열풍 속에서 1년 5개월 사용한 내 핸드폰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건 내 핸드폰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나란 사람이 무시당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가족이기에 할 수 있는 장난 섞인 말일 수도 있고 재수하는 동생에게 좋은 대학을 가서 성공했으면 하고 바라는 엄마의 마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얼굴은 빨개졌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서울에서 전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연락 받은 지인의 모친상에도 부조할 돈 5만원이 없어서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모습은 나의 가난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했다. 그렇다. 30살을 코앞에 두고 있는 계약직. 그게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은 주위 사람과 비교할 때 더 처참하게 와 닿는다. 주위 친구들은 대학 졸업하고 대부분 바로 취업하여 부지런히 돈을 모아 하나 둘 차도 마련하고 결혼 자금도 마련해 놓았다. 친구들은 그래도 그럭저럭 비교 대상에서 제외하고 바라볼 수 있지만, 한 살 한 살 나이 먹어 갈수록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고, 차를 구입하고, 한 달에 100만원씩 적금을 하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비참함에 이어 조급함이 밀려온다. '아…. 나는 언제 돈 모아서 부모님 집도 사드리고 시집도 갈 수 있나'라는 생각의 조급함이 말이다.

 

돈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최고의 가치가 아님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돈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다.

 

그 사람이 들고 온 가방의 가격. 그러한 것들이 곧 그 사람을 나타내는 가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당신이 타고 다니는 차가 당신을 말해준다'라는 광고 카피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이런 사회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끄러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명품백 하나는 있어야겠어. 부끄러워서 결혼식이나 돌잔치를 못가겠어." "친구 남자친구가 이번에 명품 화장품 사줬대. 왜 난 그런 남자친구가 없을까" 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함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다. 슬프게도 말이다.

 

나만 겪었을 것 같지 않은 20대 청년이라면 겪어 봤을법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깐 이런 세상을 우리 한번 바꿔보자" 이런 건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건 현재 한국사회에서 성장한 20대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하고 싶다. 돈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은 있다." "저 친구는 돈은 없지만 ()은 있다." 라는 가치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우리 20대들이 돈이라는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 가치를 최우선으로 놓기보다는 더 중요한 가치를 생각하는 삶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돈이라는 가치도 함께 추구했으면 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구는 결코 나쁜 것은 아니므로. 적어도 20대에 다른 가치를 최우선으로 해봐야 돈이 더욱 많이 필요한 시기가 되는 30대 40대·50대가 되어도 돈 버는 기계로의 삶은 살지 않을 수 있을 듯 하기 때문이다. 사촌 언니 결혼식에 있었던 작은 헤프닝을 말미 암아 평소 20대에게 하고 싶었던 말 그리고 내 자신에게 해보고 싶었던 말을 해본다.

 

"우리 아직 젊잖아. 돈보다 해보고 싶은 거 한번은 해보자. 좀!!"

 

/ 임숙정(전주대 고전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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