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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16)강과 문학(상)-시(詩)로 흐르는 동진강

강변의 시인들, 고향 땅 이야기 출렁출렁 풀어내다

동진강 하구 (desk@jjan.kr)

(부제)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16) 강과 문학(상)- 시(詩)로 흐르는 동진강

 

(부제) 강변의 시인들, 고향 땅 이야기 출렁출렁 풀어내다

 

(부제) 신석정·김민성·오남구·박영근·박형준 시인 등

 

(부제) 강과 들녘의 삶·역사·문화…애정으로 담아내

 

동진강 하구역 강물은 오래 흘러온 길을 갯물에 씻고

 

물 때가 온다

 

물골을 트고

 

갯벌이 논다

 

농게 참게 능쟁이는 볼볼볼 춤을 추고

 

드난살이 말뚝망둥어는 알을 슬고,

 

먼 개를 지나 숭어새끼들은 너울을 타고 솟구쳐 오고 있을 것이다

 

뻘밑 깊은 곳에서는

 

백합이 숨 쉬는 소리

 

한 숨

 

한 숨

 

살이 오르는 소리

 

 

김제 신평천 (desk@jjan.kr)

 

 

달과 지구 사이 수만년의 바다가 흘렀을 것이다

 

천 갈래 만 갈래 살아 넘치는 바다

 

바람 자면 저물어 멀리 야위는 바다

 

밀물과 썰물 사이 수만년 산 것들이 물길을 열었을 것이다

 

갯벌에

 

강물에

 

댕기물떼새 한 마리 기진한 허공을 내려와

 

뻘 한 점을 물고 있다

 

<박영근 시인의 시 「물때」 전문>

 

동진강은 희망의 물줄기를 찾는 시(詩)의 힘으로 흐른다. 시인들의 핏줄에 스민 '동진강의 풀잎들은 가슴으로/가슴으로 쓰러져 들어와 바람처럼/물결처럼'(이영진 시 「동진강가 그 미친 햇살로」中) 성긴 머리를 풀어 시인을 깨우고, 이윽고 강은 출렁출렁 숨을 쉬며 거침없이 흐른다. 긴 긴 어둠을 뒤흔드는 더운 피, 참 삶을 꿈꾸며 강을 건너는 사람들. 신석정(1907-1974), 김민성(1927-2003), 정렬(1932-1994), 박정만(1946-1988), 오남구(1946-2010), 박찬(1948-2007), 박영근(1958-2006)…… 동진강이 삶인 이 땅 시인들의 뼛속까지 잠기는 동진강 물소리.

 

부안 출신인 오남구 시인은 1975년 첫 시집 『동진강월령』에서 「벽골제」, 「백산나루」, 「조소리 구름밭」, 「숫구지 나루」, 「보쌈네 흰 눈썹」, 「말목댁 베 맨 솜씨」, 「부안 기생의 이쁜 눈썹」 등을 통해 신명 지핀 넋두리를 풀어냈다. 박강순 시인은 1993년 첫 시집으로 『동진강』을 상재했다. 강민숙·유미선·황송문·허만하 시인은 「동진강」을 시제로 동명의 작품을, 정휘립 시인은 1992년부터 2001년까지 각종 문예지를 통해 6편의 연작 시조를 발표했다.

 

평생 고향인 정읍을 지키고 있는 장지홍 시인의 작품에는 농경문화의 향토성과 동진강의 곰삭은 민속이 해학 가득한 민화처럼 자리 잡고 있다. '방귀대회에 나가서 방귀로 동해물과 불러버렸더니 대번에 일등상을 주더라는 뻥쟁이 만덕이'(「칠석날」中) 얘기처럼 그의 시에는 동진강의 푸지고 푸진 삶들이 민화처럼 곰삭아 흐른다.

 

'바람새 한 떼 푸드득 품에' 안는 「가을 동진강」의 낭만과 서정은 김찬옥 시인이, '빈 들녘 깊은 숨결 산을 돌아 에워' 오는 「겨울 동진강」의 물소리는 이금배·임남재 시인이 품어준다. 동진강 끝머리의 애잔한 서사는 진흥원 시인의 「동진강 하구」와 안도현 시인의 「개펄에서 놀던 강」에 담겨 있다.

 

동진강이 개펄에 닿는 부안 동진면 문포. 박남준 시인은 그곳에서 '작고 낡은 배 몇 척과 아이들의 코를 벌름거리게 하던 그 비린 갯내음'(박남준 시인 「문포바다까지」中)을 떠올린다. 변산반도가 고향인 박영근 시인도 동진강 하구 마른 갯벌을 위해 시 「물때」를 남겼다. 어린 날 뻘밭 자욱했던 하구(河口)의 흥성거림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부안 출신 박형준 시인의 시 「싸리꽃」에는 수리조합 둑 아래로 흐르던 초록풀 물든 동진강 물소리가 알싸하게 들린다. 어린 시절 강에서 건져낸 오빠에게 부끄러워 인공호흡을 하지 못하고, 그날 이후 다시는 오빠를 볼 수 없게 된 슬픈 추억. '수리조합 둑방의 풀이 유난히 푸르다/사람들이 오누이를 에워싸고 있고/무릎 꿇고 고개 숙인 소녀의 모습/수리조합 물살에 떠내려간다/물에서 건져낸 오빠의 얼굴/풀물 들어서, 소녀는 얼굴이 발그레하다' 새만금물막이공사로 꽤 오래 숨을 참고 있는 지금의 동진강도 발그레하다.

 

김제 금구가 고향인 최형 시인은 그의 네 번째 시집 『이런 풀빛』에서 유난히 '강'의 심상을 드러냈다. '강물은 필연적으로 흘러가는 곳으로 흘러간다'는 뻔한 명제에 대한 그의 시적 확신은 전망 없는 시대에 절망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이데올로기에 깊게 패인 그 상처, 그믐달처럼 외롭게 숨죽이며 살아가야했던 시인은 이제 절망의 시대인 겨울에도 봄의 꿈을 꾼다. 강물에 실리는 늦봄 어스름이다.

 

금구천, 감곡천, 두백천이 합류하는 김제 원평천은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초록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고 시를 쓰는 김유석 시인은 지금도 징게맹게 너른 들에서 허리 굽혀 시를 건져 올린다. '머뭄과 떠남을 물에 일러/저편에 이른들 수심(水深)을 아는가'라는 반문이 늘 그와 함께 한다.

 

동진강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인은 '동진강이 가까워오면 임의 목소리가 들리고/(중략)/손을 흔들자 임은 보이지 않고/동진강 강물만/그의 사랑을 안고'흘러간다는 정군수 시인의 시 「변산의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를」에서 찾을 수 있다. 범영 김민성 시인이다.

 

'동진강 강물은/바다로 흘러가지만/바닷물이 아니었다//응어리진 가슴을/강물에 씻지도 못하고/바닷물에 씻지도 못하고/늘상 누르뎅뎅하게 흘러보내야 했던/그 많은 세월들/이젠 되짚어 생각하기도 싫었다//발길 끊겨진 강뚝길/바람은 혼자 강에서 일어나/온종일/흔들리다가 속삭이다가/갈 길을 잊어버렸고/갈 길을 잊어버렸고/흐를 줄을 모르는 강물은/또 다른 사연의 아픔만 몰고 왔었다'(김민성의 시 「동진강 강물」 전문)

 

웅성 깊은 고향사랑과 정중한 인간애가 행간마다에서 꿈틀거리는 그의 시편들은 고향 땅의 역사와 문화를 지극한 애정으로 보듬어 안은 절절한 감성으로 더욱 빛나고 풍성했으며, 그로 인해 동진강은 더 미더워졌다. '고향 부안을 관통해 흐르는 동진강의 처음부터 끝까지 날아가는 한 마리 새'(「동진강 아으리랑」中)가 되기를 소망했던 시인. 그가 떠난 자리는 허허롭지만, 시인은 시로 남아 바람이 거세게 불고 눈비가 쏟아져도 속이 꽉 찬 고목으로 동진강의 황혼을 안고 여울져 흐른다.

 

울창한 고목이 돼 있을 그가 강처럼 섬겼던 신석정 시인은 '서러운 옛 이야기 지줄대며/동진강 굽이 굽이 흐르는 들'과 '우리 할아버지들의/피맺힌 옛 이야기를 잊지'말라며 '서럽고 안쓰러운 이야기는/동진강 푸른 물줄기'(「곡창의 새해」中)에 실어 아득한 신화로 떠나보내라고 서둘러 말했다. 그러나 석정과 범영이 그토록 기다렸을 것은 메마른 산하를 울릴 드높은 격양가. 선배 시인의 외침은 젊은 시인들의 가슴에 이르러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귀를 기울이라'(안도현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中)는 다짐으로 동진강의 시사(詩史)를 더욱 탄탄하게 받치고 있다. 이제 동진강은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다.

 

/최기우(극작가·최명희문학관 기획연구실장)

 

※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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