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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18)강과 종교

'새 세상' 열망…질곡의 근대사 민초들 신앙의 터전

수류성당.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있으며, 1890년대 호남 3대 성당중 하나로 꼽혔다 (desk@jjan.kr)

동진강은 한국 종교의 성지들을 담담하게 품고 흐른다. 동진강 일대는 동학과 천도교, 증산교, 보천교 등의 발상지이자 태동지이며, 초기 기독교와 가톨릭 신자들의 흔적도 곳곳에서 찾아진다. 유교와 무속신앙의 맥도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 특히 원평천의 발원인 김제 금산면 일대는 금산사와 귀신사, 금산교회, 증산법종교본부, 수류성당 등이 모여 있는 종교인들의 순례지다.

 

미륵신앙의 본산인 금산사는 1400여 년 전에 창건된 유서 깊은 고찰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후 1626년에 재건된 것이다. 금산사 일대는 2008년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적 제496호로 지정받을 만큼 역사와 문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김제 금산교회 'ㄱ' 자형 교회 건물로 1908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세워졌다. 남녀유별의 유교적 관습에 따라 남자석과 여자석을 분리해서 지은 한국 초기 교회 건축물이다. (desk@jjan.kr)

뎅그렁, 뎅그렁. 낡고 오래된 종탑에서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 것 같은 김제 금산교회(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는 1908년 건립됐다. 남녀가 한 자리에서 얼굴을 맞댈 수 없었던 당시의 풍토는 남쪽은 남자들이, 동쪽은 여자들이 앉아 예배를 보는 'ㄱ'자형 건축해법으로 해결했다. 삐거덕거리는 실내에는 오랜 역사를 알려주는 다양한 사료들이 전시돼 있고, 교회의 역사와 함께 했다는 낡은 독일제 풍금은 언제라도 정겨운 소리를 들려줄 것 같다.

 

이 곳은 초기 교회 신자들의 깊은 신앙심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가 전한다. 주인과 머슴의 관계였던 조덕삼과 이자익의 이야기다. 주인과 머슴이 대결을 펼친 장로 투표에서 머슴이 뽑히면서 두 사람은 집에서는 주인과 머슴으로, 교회에서는 신자와 장로의 관계로 만나 주인이 머슴인 장로에게 설교를 들었다는 것. 이후 조덕삼은 머슴이자 금산교회 1대 장로인 이자익을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게 하는 등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모악산 자락 김제시 금산면의 금평저수지. 주변에 증산교 본부와 금산사·금산교회·수류성당 등이 모여 있어 종교인들이 찾는 순례지가 됐다. (desk@jjan.kr)

 

 

이곳에서 금평저수지를 지나 차로 20여분 거리에 수류성당이 있다. 교복을 입은 갈래머리 여학생들이 발랄한 웃음으로 뛰어나올 것 같은 이곳은 완주군의 되재와 익산시의 나바위와 함께 1890년대 호남의 3대 성당 중 하나로 꼽힌다. 1907년 48간의 성당을 건축했으며, 이듬해 전북 최초의 신식학교인 인명학교를 세워 한문과 신학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의 건물은 1959년 지어졌으며, 영화 <보리울의 여름> 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동진강은 공소(公所)가 곳곳이다. 공소는 사제가 없는 교회. 한국의 천주교는 일본·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서양인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민족 스스로의 믿음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자랑스러운 역사만큼 아프고 시린 순교의 역사도 간직하게 되었다. 60여 년 동안 정부의 극심한 탄압을 견딜 때 공소는 신앙의 터전이자 유일한 안식처였다. 공소는 익산과 완주, 진안, 장수 등 이 땅에 고르게 분포해 있는데, 정읍에 유달리 많다.

 

동진강의 본류를 따라 산내면 능교리 능교(능다리)공소, 칠보면 반곡리 동막공소, 산외면 상두리 구장리공소와 종산리 원전(원바실)공소, 옹동면 상산리 저상(닥배미)공소, 태인면 거산리 신기공소와 태창리 태산공소가 있으며, 정읍천을 따라 내장동 쌍암리 죽림(대숲골)공소와 입암면 등천리 등천리(등내)공소, 북면 한교리 한교공소, 신월동 신성공소, 장명동 구량실공소가 있다. 정읍 감곡면 유정리 옥신공소와 진흥리 석점공소는 김제 땅을 적시는 원평천의 지천에 있다. 동진강 끝머리인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와 의복리는 각각 천주교창북공소와 돈지천주교회공소가 있다.

 

공소가 있는 교우촌(敎友村)은 대부분 박해를 피해 산간벽지나 궁벽한 시골마을에 터를 잡은 곳. 당시 교인들은 숨어 살면서 숯을 굽거나 옹기를 만들어 팔고, 화전을 일구어 조·감·한봉 등으로 연명하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특히 정읍 산내면 매죽리와 백필리, 능교리는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자리 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건 신부의 친동생인 김난식(1827-1873)과 사촌조카인 김현채(1825-1888)의 묘가 산내면 종성리 일대에 있는 것으로도 그 범위를 짐작할 수 있다.

 

공소는 대부분 스스로의 역사를 밝히고 있는 곳이 드물다. 그러나 동막공소는 '1886년 경상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迫害)를 피해 순창 회문산으로 피신했다가 이주한 곳'이라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신성공소 역시 조선 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피난을 와 교우촌을 형성한 곳이다. 1903년에 건축된 우리나라 초기 한옥 형태의 성당건축으로 2002년 4월 6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신기공소는 평지에 교우촌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교우촌들과 다르다. 1934년 태인 공구 내에서 살던 주민 3가구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신기'라는 이름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고, 한국전쟁 당시 정읍·순창·금산 등 인근 산골마을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큰 마을이 됐다. 차(車)씨들이 정착해 이룬 칠보면 수청리 청광마을의 공소 건물은 한국 전쟁 때 인민군에 의해 소실됐다. 등천리(등내)공소 역시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4년 뒤 다시 세웠고, 태산공소는 1933년 태인에서 칠보로 넘어가는 거산고개에 세워졌으나 30여 년 뒤 철거됐다.

 

동진강은 다양한 종교가 발생한 곳이지만, 그 귀함은 다툼 없이 한데 어울려 있다는 것에 있다. 부침(浮沈)의 역사를 간직한 신앙의 터전들. 동진강은 그 곁에서 가깝게 흐르며 부침하는 작은 배처럼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면서도 끝끝내 그 흐름을 그치지 않았다.

 

/최기우(극작가·최명희문학관 기획연구실장)

 

※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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