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지키려고 하다 보면 남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런 상처를 주고 죄의식이 생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고 저 또한 그런 죄의식이 있죠. 한국 사회에서 어른이 되는 것은 성숙이라기보다는 어두운 성장이란 생각이 들어요. 어두운 성장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파수꾼'은 절친했던 세 친구 가운데 한 명이 죽고 나서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하나씩 들춰가면서 충격적인 진실을 밝히는 묵직한 영화다.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통념을 깨며 십대 소년들이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단절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윤성현 감독의 장편데뷔작인 '파수꾼'은 지난해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무산일기'와 함께 뉴커런츠상을 받았고 최근 제40회 로테르담영화제 경쟁 부문에서도 상영됐다.
윤성현 감독은 2008년 이 영화를 처음 구상할 때만 해도 "학원물이나 누아르 분위기의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죽음을 영화적인 소재로 재미있게 만들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유명인의 자살 사건 등을 접하면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 감독은 "대중매체에서는 자살 사건이 있으면 원인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버린다"면서 "과연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를 단순하게 얘기할 수 있나 하는 고민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너희는 이러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들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아요. 타인의 시선에 비친 모습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죠. 그런 것이 사람을 약하게 만들어요. 남들 기대치를 100퍼센트 맞추는 사람은 없거든요. 괴리감이 커지고 자기를 지키려고 남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죠. 저는 이런 게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가 얼마나 측은하게 살아가는지를 담고 싶었어요."
영화의 제목은 J.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따왔다고 했다. 상처를 입은 인물의 어두운 성장을 담았다는 점에서 '호밀밭의 파수꾼'과 자신의 영화가 비슷하다고 말했다.
'파수꾼'이라는 제목에 진실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란 뜻을 담았다고 했다.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말을 많이 하지만 핵심을 뚫는다기보다는 겉치레죠.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아요. 그런 부분을 반어적으로 쓴 거죠. 약한 자신을 지키려고 하지만 그런 행동은 자기도 지키지 못하고 상대방도 지키지 못하게 만들죠."
영화는 미스터리 구조로 관객의 흥미를 붙잡으면서 뒤통수를 강하게 친다. 그는 "아버지와 죽은 아들이 나오면 사람들은 당연히 피해받은 애가 자살했고 아버지가 범인을 찾아나서겠구나 하겠죠. 그런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했어요. 통념을 보여주고 초반에 깨고 싶었어요."
극 중에서 세 친구에게는 아지트 같은 폐역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에게 폐역사는 "도착지도 출발지도 아닌 경계에 있는 곳"이다.
"그들의 심장 같은 곳이 기차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름다운 한때일 수도 있고 현재에선 상처나 외로움의 공간일 수도 있고 죄의식의 공간일 수도 있어요."
세 친구 역의 배우들은 신인이지만 실감 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윤 감독은 소년 같은 느낌이 나는 배우들을 뽑았다면서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들이라 촬영 전에 리허설을 1개월 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들에게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라고 주문했다. "이 순간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강박감이 을 버리라고 했어요. 상대방의 말을 듣고 상대방을 느끼라고 했죠. 기본적인 건데 대본이 머릿속에 있으니 잘 안 되는 거였어요."
그는 이어 "배우들이 다음 상황을 알고 연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알고는 있지만 모르는 것 같이 즉 정서적 준비가 안 된듯이 순간순간 느끼면서 연기하도록 주문했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을 통해 만들었다. 장비 대여비를 아낄 수 있었기에 제작비는 5천만원이 들었다.
그는 배우와 스태프의 희생으로 영화를 완성했다면서 촬영이 길어질 때면 자신이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밀어붙이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좋은 작품 만들자고 (스태프와 배우가) 희생하는 건데 제가 일시적인 미안함 때문에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본질이 사라지는 거죠. 저는 나쁜 사람이 돼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했어요."
올해 29세인 윤 감독은 날 때부터 10살 때까지 유학생이던 어머니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았다. "흑인 빈민가에 살았는데 잠잘 때 갑자기 총소리가 날 정도로 동네가 끔찍했어요. 외로웠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영화를 많이 보게 되고 영화에서 위안을 얻었어요. 자연스럽게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영화는 상업영화가 될 것이라고 했다. "'파수꾼'이 좀 지루하더라고요. 좀 덜 지루하고 더 재미있는 영화를 해야죠. 저는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좀비물이든 멜로든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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