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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머컬쳐학교 교장 임경수 박사

"불확실성의 시대, 농촌에 희망이 있습니다"

임경수 박사(왼쪽)와 조상진 선임기자가 올 4월 개설한 퍼머컬쳐학교 과정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desk@jjan.kr)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안덕마을. 전주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심산유곡에 들어온듯,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곳이다.

 

이곳은 부지런한 주민들과 10여 년전 고향에 내려와 문을 연 민속한의원이 힘을 합쳐 만든 건강·힐링체험 마을이다. 장파 미치 신기 원안덕 등 4개 마을주민 54명이 1억3000만 원을 출자해 '안덕파워 영농조합법인'이란 이름의 마을공동체 회사를 세운 것이다. 국내 커뮤니티 비즈니스 1호다. 건강과 치유를 테마로 토속한증막과 황토민박, 그리고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최근 각종 연수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생태적 삶과 일자리 창출, 농가소득 등 1석3조를 올리는 농촌의 오래된 미래(Acient Futures)라고나 할까.

 

이러한 컨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원군(援軍)이 지난해 말 이곳에 정착했다. (주)이장 대표 임경수 박사다. 임 박사는 전원마을 조성과 생태농업분야에서 내노라 하는 전국구다. 그가 이곳에 퍼머컬쳐 대학과정을 설립한 것이다. 그로 부터 퍼머컬쳐의 운영과 지속가능한 농업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 반갑습니다. 특별히 안덕마을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전부터 농촌에 들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제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그 대신 제가 잘 할수 있는 게 뭘까를 고민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저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젊은이를 키우는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는데요, 완주군하고는 2008년에 인연이 돼서 마을계획을 하게 됐는데 그곳이 바로 안덕마을이었습니다."

 

- 고향도 서울이고, 대학도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는데 어떻게 농촌문제에 관심을 갖게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처음에 석사학위는 대기오염을 가지고 했습니다. 그런데 석사학위를 받자마자 느낀 점은 제가 공부한 게 환경문제에 별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면 환경정책이나 기술, 환경공학은 환경문제가 생기는 것을 가정하니까요. 사실 가장 좋은 것은 환경오염이 생기지않게 하는 겁니다. 그것이 뭘까를 고민했어요. 가장 좋은 것은 자연에 대한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 해답이 농업과 농촌에 있다는 것, 그래서 전공을 바꿨습니다."

 

- 올 4월부터 안덕마을에 퍼머컬쳐 학교를 열었는데 어떤 분들이 다닙니까?

 

"고등학교 이상을 졸업하고 농업과 생태분야에 관심있는 분들입니다. 1년에 1기수를 운영하고 총 8개월 과정입니다. 올 4월에 정원 20명으로 시작했는데 현재 14명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2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까지, 전국에서 왔습니다. 농촌이나 지역에서 일해보고 싶다거나, 귀농·귀촌을 희망하거나, 이미 경험이 있는 분도 계십니다."

 

- 퍼머컬쳐가 무엇인지 좀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퍼머컬쳐는 호주의 빌 모리슨(Bill Mollison)이란 분이 만들어낸 체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생태마을을 계획하거나 설계하는데 쓰는 방법인데요. 빌 모리슨의 고향이 남부의 타즈메니아라는 섬인데 우리나라 같으면 제주도와 같은 휴양지입니다. 모리슨이 멜버른에서 일을 하다가 자기 고향에 가보면 고향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꾸 환경은 망가지는데 자기 친구들은 잘 살지 못해요. 이것은 뭔가 잘못됐다, 이렇게 생각한거지요. 조경설계를 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전 세계 여행을 다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왔습니다. 충남 홍성에 와서 유기농 농부를 만났어요. 질문을 했습니다. '이 논이 언제부터 논이었나요?' 농부가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아버지 때도, 할아버지 때도 논이었다. 몇백년, 아니 몇천년이 넘었는지 모른다' 빌 모리슨이 깜짝 놀랍니다. 호주에서는 그렇게 농사짓지 않거든요. 호주는 워낙 땅이 넓으니까 지력이 떨어지면 휴경을 하거나 아예 버립니다. 반면 우리는 한 땅에서 한가지 작목을 계속하는데도 소출이 줄어들지 않거든요. 그래서 빌 모리슨이 호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한국에서는 퍼머넌트(permanent)하게 어그리컬쳐(agriculture)를 하고 있다, 그래서 퍼머컬쳐가 탄생하게 된 거죠."

 

- 그러면 지속가능한 농업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농업에서 끝나는게 아니구요. 경제, 지역사회, 문화 이렇게 확장이 되는 것입니다."

 

- 과목은 어떤 것을 배웁니까?

 

"환경생태학, 퍼머컬쳐, 지역개발, 건축과 조경, 농촌경영학 등이 실무과목이고요. 소양과목으로 인문학을 배웁니다.'너, 왜 농촌에 들어 갔느냐'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하려면 인문학 베이스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위기와 시련이 닥치면 접습니다. 그리고 도시로 가죠. 또 마음을 낮추게 하는 방법을 습득해서 시련이 왔을 때 자기를 지키게 하는 과목이 '영성과 소통'입니다."

 

- 애로사항도 있을 것 같은데요?

 

"14명의 생각과 수준을 맞추기가 참 어렵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한 학기가 지나니까 잘 적응하게 되었는데 1학기 중반부터 하루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거든요. 명상과 108배, 검도 등 삶을 조금 깊게 들여다 보면서 적응하게 된 것 같아요."

 

- 사회적 기업 (주)이장 얘기를 좀 하죠. 어떻게 이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까?

 

"박사과정 들어가서 농업 공부한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더라구요. 귀찮아서 '이장되는 게 꿈'이라고 대답했어요. 그러다가 회사 창업 전에 서울대 내에 벤처회사를 등록했거든요. 그때 이름을 지을 때,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 제일 좋다더라, 해서 이장이라 부르기 시작했죠."

 

- 요즘은 이장되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창업과정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처음에 창업하려고 했던 것은 농촌일 뿐만 아니라 환경, 생태, 유기농업에 관련된 여러가지 일을 해보고자 해서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 일은 제가 호주에서 배운 퍼머컬쳐를 기본으로, 우리 농촌을 생태마을로 바꾸는 일을 했습니다. 때 마침 정부가 그린투어리즘과 관련해서 마을사업들을 많이 벌이면서 마을의 기본계획을 하거나 주민교육·컨설팅을 해 왔구요. 두번째로 했던 일은 도시민들이 농촌에 들어가려고 할 때 기존의 농촌마을에 들어가기가 좀 어려운 경우가 있거든요. 주변의 문화 환경이 다르거나 정주환경이 자기의 생각과 다를 때 그런 분들을 위해 거주단지를 아예 새롭게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 경영이 독특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제가 10년을 회사를 경영한다고 해봤는데 경영에는 큰 재주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가치있는 일을 찾다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구요. 사실 저희는 어떤 사업분야가 잘 돌아가면 자꾸 독립을 시키거든요. 제가 여기 와서 학교를 할 수 있는 것도 대외적으로 대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의 독립해서 가능합니다. 저희는 그것을 자율경영이라고 부르는데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 이 모토가 계속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회사경영에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3명이든 5명이든 한 팀이 되면 결정을 위임합니다. 인사권 예산권 작전권을 모두 준 거죠. 제가 대표지만 직원 1명도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웃음)"

 

- 그 동안 컨설팅을 100군데도 넘게 했는데, 마을마다 수요에 맞춘 유형이 있을 것 같은데요?

 

"마을에 있는 자원이나 환경을 보고 저희가 판단을 하고 마을지도자들과 상의를 하는데요. 어떤 유형보다는 절차가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주민들이 의지를 갖고 조직을 만들고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하구요. 두번째 단계는 뭐든지 작은 사업을 해서 꼭 성공해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주저 앉아요. 많은 전문가들이 처음 마을계획을 할 때 굉장히 멋있는 계획을 해요. 근데 그건 어렵거든요. 아주 쉬운 것, 그렇지만 성과가 날만한 것, 이것부터 해야 합니다."

 

- 지금 농촌의 현실은 젊은이들이 거의 없어 활성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인데요?

 

"그게 제약사항 중의 하나입니다. 지역과 관련해서 일을 하다 보니까 '공공성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죠. 그 동안 농촌개발과 관련해 정부가 많은 교육을 했는데요. 그 교육은 경쟁력있는 사람을 만들려는 교육이었어요. 경쟁력을 확보해서 자기 이익을 취하거든요. 그런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런 사람만 가지고 농촌을 발전시킬 수는 없거든요. 사실 지역에 NGO도 있고 지역신문도 있는데 이슈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지역의 활동가로서 역할을 할 수 없거든요. 여하튼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들어와야 뭔가 자극을 받고 지역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귀농·귀촌을 준비하거나, 이미 한 사람들도 꽤 많은데…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제가 시골에 왔다고 하니 먼저 교육문제부터 말을 해요. 아이들 교육이 어렵지 않느냐는 거죠. 지금 저희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어서 고민을 안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의 방과후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요. 학원을 보낼 필요가 없어요. 또 한가지는 도시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해서 더 행복하게 사는 걸까, 지역사회에서 얼마든지 보람있는 일을 찾을 수 있고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원하는 교육이나 직업의 수준을 낮추고 바라보면 별로 걱정할 게 없어요. 요즘 선생님이나 학부모 모임에서 저를 강사로 부르는데요,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직업이 2만개랍니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원하는 직업은 20개랍니다. 그 20개 직업을 위해 사교육을 하느라고 아이들은 학원을 뺑뺑돌고요, 부모들은 학원비 대느라고 매몰돼 있거든요. 제가 볼 때 이것은 정신나간 사회거든요. 우리 사회는 1만9980개의 직업이 있어야 돌아갈게 아녜요. 그렇게 사회를 보기 시작하면 농촌 오는게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게다가 자원도 풍부하고 경쟁할 사람도 적죠.(웃음)"

 

- 그 동안 전국을 섭렵하셨는데 전북의 농촌을 활성화 시킬 방안을 제시해 주신다면?

 

"광역 단위별로 보면 전북은 경제적으로 낙후가 많이 됐죠. 하지만 반대로 농촌의 다양한 자원이 난개발되어 있지 않고 잘 보전되어 있으니까 가능성이 있는 것 같구요. 그런데 한 가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농촌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돈을 많이 벌게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죠. 농촌관련 지표를 놓고 보면 우리 농촌이 어려워진 이유가 돈을 못벌어서가 아닙니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매출액 늘었구요, 농가소득도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실소득이 낮아졌거든요. 그 이유는 지출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많이 벌어 많이 쓰는 구조가 된 거죠. 이걸 바꾸지 않는 한 농촌이 잘 살수 없습니다."

 

-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거죠.

 

"첫번째가 퍼머컬쳐 같은 것을 도입해서 생태적으로 사는 겁니다. 에너지도 스스로 자립하고 주변에서 많은 것을 얻어내고, 옛날에는 다 그랬죠. 두번째가 협업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지출을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농민들과 협업해서 기계도 같이 쓰고 퇴비도 같이 만들고 해야 더 효과적인 거죠. 세번째는 생활에서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요. 그것은 공동체가 돼야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다양한 방식의 협동조합, 또는 사회적 기업, 커뮤니티 비즈니스, 이런 것이 필요한 거죠. 그렇지 않는 한 농촌에 답이 없습니다."

 

- 그런데 우리의 농업정책 역시 시장 위주가 아닌가요?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라. 이것만 가지고는 답이 되지 않습니다. 일정부분 사회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완주군은 사회정책적인 농촌정책을 활발하게 도입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이유도 있죠. 퍼머컬쳐 과정은 학생들 입장에서 그런 현장이 있어야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거든요."

 

- 최근에는 농촌에서 마을 만들기가 너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오해가 조금 있는데요. 마을 만들기를 도입한 것은 일본입니다. 일본에서는 마찌추쿠리(まちづくり)라고 부르죠. 마찌가 정(町)을 번역한 건데요. 정의 수준은 우리나라 면(面)보다 크고 군(郡)보다 조금 작습니다. 그런 규모를 우리나라 작은 마을에 적용하니까 잘 안돌아가는거죠. 그래서 요즘 저는 용어를 바꿨습니다. 마을만들기가 아니라 지역만들기, 지역가꾸기, 지역공동체로요. 또 많은 분들이'마을이 희망이다'고 말하지만 그 때 마을은 지금 있는 공간구조로서의 마을로 해석해선 안됩니다. 예전에 생산 소비 교육 문화 복지가 하나로 돌아갔던 마을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 끝으로 지역에 사는 분들에게 힘이 되는 얘기를 좀 해주시죠.

 

"저는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불확실성이 많은 시대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기후 변화 등 환경변화가 심하고 경제위기도 예측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잘 사는 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이런 불확실성에서 어떻게 벼텨낼까를 고민할 때라고 보거든요. 이런 불확실성 시대에 정말 안정적인 곳은 농촌입니다. 희망이 농촌에 있다는 거죠. 어쩌면 우리 사회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농촌에 그런 기반이 남아 있어야 하고, 그런 기반을 하나씩 만들어 갈 때, 농촌이 우리 사회를 지지해 줄 거라는 거죠.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농민들이, 지역주민들이 열심히 생활해 주셨으면 합니다."(임 대표는 혹시 다른 곳으로 다시 떠날 생각은 없는지를 묻자 "아이들이 점점 크니까 고향이 필요하고 동문도 필요해서 이곳에 정착해야겠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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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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