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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원 이사장(아침편지 문화재단)

"타인의 행복에 징검다리 되는 '꿈 너머 꿈' 꿔야"

고도원 이사장과 김은정 선임기자가 '명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안봉주(bjahn@jjan.kr)

2001년 8월 1일, 아침에 열어본 이메일에서 〈고도원의 아침편지〉란 이름의 편지를 처음 만났다. 이런 글이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노신의 《고향》 중에서 -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하는 이 글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인가. 편지 말미에 덧붙인 글이 있었다.

 

'이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제가 이메일 주소를 갖고 있는 분들에게 시험용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좋은 의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편지 받기를 원치 않으신 분께서는 〈홈으로〉가셔서 주소를 삭제하시면 됩니다. 고도원 드림'

 

잘나가던 중앙일간지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연설담당비서관으로 입성한 필자가 보내는 편지. 매일 아침 만나게 되는 이 수상한(?) 편지는 금세 화제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도원이란 이름 앞에 정치적 행보의 추측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비례대표 영입, 고향 출마 등 '설'만해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작 본인은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10년. 그는 많은 사람들이 추측했던 정치인이 아니라 여전히 '아침편지'의 필자이자 자신의 사재를 내놓아 만든 '아침편지 문화재단' 운영자로 살고 있다. '아침편지' 식구는 현재 260만여 명. 수적 그렇지만 '아침편지 문화재단' 식구들이 열어가는 사랑과 신뢰로 열어가는 소통의 방식은 우리시대의 새로운 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개인적인 이메일로 시작한 '아침편지'로 경이로운 소통의 문화를 일구어낸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60). 충북 충주시 노은면 문성리 자연휴양림 안에 자리 잡은 문화재단에서 그를 만났다. 2층 형식의 특이한 구조로 지어진 그의 집필실은 벽면이 모두 책으로 빼곡히 차있었으며 정갈했다. 주옥같은 아침편지가 가장 많이 쓰여지는 공간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행복이 충만해 보이는 여유로움이 그 공간 안에서 더 살아나는 듯 했다.

 

세 번의 일정 조정 끝에 인터뷰 시간을 잡았을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의 이 여유로움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궁금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꿈꾸는 일'과 '명상하는 시간'이라고 답했다.

 

그는 각박해진 세상, 속도전에만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잠깐 멈출 줄 아는 '쉼'을 일상에 들여놓을 것을 강권했다.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일수록 쉬는 방법은 알아야 해요. 쉴 줄 모르면 성공적인 삶도 의미가 없습니다. 처절하게 경험한 나의 삶으로부터 얻은 교훈이지요. 휴식의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전달하는 일은 이제 나의 소명입니다."

 

책읽기와 글쓰기, 소통과 명상, 그리고 그가 새롭게 전파하기 시작한 '꿈너머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아침편지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가 알게 됐다.

 

-산세가 아주 좋습니다. 산길인데도 아주 잘 닦여 있던데요. 연고가 있습니까.

 

"연고는 없습니다. 우리 재단이 아침편지와 함께 명상센터 설립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충주시에서 그것을 알고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충주가 당시 이곳에 휴양림 조성을 추진하고 있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찾아온다고 들었습니다. 명상센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소문이 많이 났던데요. 이런 성격의 공간이라면 이사장님 고향인 전북에서도 유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고향을 버리셨나요.

 

"(웃음) 왜 그런 생각을 안했겠습니까. 인연이라는 것이 어느 때인가는 고향을 떠나야 할 때가 오는 것인가 봐요. 이곳은 사실 전국 각지에서 접근성이 좋은 장점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명상센터를 만들어보겠다는 우리들의 꿈과 계획을 알아주고 관심 가져주고, 힘을 모아준 곳입니다. 고향도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관심이 없었고. 그때만 해도 오히려 무슨 소리냐 핀잔을 들었었어요."

 

-이 사업을 시작하신 것이 언제쯤입니까.

 

"꿈을 꾸고 그것을 꺼내놓은 것은 2003년 9월 4일입니다. 아침편지 밑글에 제 꿈 이야기를 썼지요. 그 때 마음속으로 땅 60만평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와서 쉬고, 명상하고 자연 속에서 운동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으면서 자기의 꿈을 찾고 키우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을 글로 표현했었는데, 그 글이 지금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다 현실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경험으로도 '꿈을 적어놓아라' '구체적으로 적어 놓으면 그것이 언젠가는 기적처럼 실현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줍니다. 꿈은 현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이제 '고도원'이란 이름은 '아침편지'와 붙여 쓰게 되는 보통명사가 된 듯 합니다. 식구가 정말 많이 늘었더군요. 아침편지도 그렇지만 함께 운영하는 '몽골기행'이 화제던데요.

 

"2001년에 아침편지를 시작한지 1년 반 지나서부터 꿈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 생겨난 열두 개 꿈이야기였죠. 그 종합편이 명상센터인 '깊은 산속 옹달샘'이고 또 하나가 몽골에서 말 타기였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꿈꾸어온 일이었어요. 2학년 때인가 징기스칸이라는 위인전을 읽고 도대체 몽골이라는 땅이 어떤 땅이기에 800년 전에 세계최고의 지도를 그려낸 영웅이 태어날 수 있었는지 궁금했었습니다. 마침 청와대에 있을 때 대통령을 모시고 몽골을 가게 되었는데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 너른 초원과 밤에 쏟아지는 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 800년 전에 세계를 제패할 정도로 강했지만 지금은 인구 300만에 불과한 나라로 한국과의 관계 역시 역전되었죠.

 

"지금은 그렇지만 당시의 그들이 가졌던 동인을 생각하면서 저는 그들의 말 타기를 주목했습니다. 이제는 말 타기로 세계를 제패할 수 없지만 인터넷이나 속도를 통해서 마음의 영토를 넓힐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꿈꾼 것이 몽골에서 말 타기였어요. 울란바토르에서 칭기즈 칸의 고향인 헨티까지 열여섯시간동안 길이 없는 초원을 달리는 여정이죠. 여행전문가들이 미친 짓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해마다 100명 200명 대단위로 1600명 정도 다녀왔습니다."

 

-대단위 여행단 또한 놀랍기도 하거니와 단순한 여행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함께 가십니까.

 

"물론입니다.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저도 일 년에 한 번씩 가는 것이 엄청난 영감과 휴식이 되거든요. 말 타기가 쉽지는 않은데, 의용군 모아서 정예군 만드는 기분으로 합니다. 나중에 징기스칸 된 기분으로 마지막 날은 30킬로미터 대장정하는데, 한번 말에 올라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30킬로를 질주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기가 막히죠."(그는 마치 말을 타고 질주 하는 듯이 즐거워했다. 여름에 한차례 떠나는 몽골기행은 해마다 신청자가 쇄도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서 경쟁률이 10대 1정도 된다)

 

-몽골기행 역시 이사장님의 꿈이 이루어진 예인데, 아직도 많은 꿈들이 있습니까.

 

"꿈이 많이 자랐어요. 아침편지에 열두 개 꿈을 쓸때만해도 '꿈너머 꿈'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꿈너머 꿈'을 많이 씁니다. 꿈이 이루어진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의 문제죠. 한사람이 어떤 꿈을 꾸든 자기 성공에 머무는 것은 그냥 꿈이라고 부릅니다. '꿈너머 꿈'은 자기에게도 의미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는,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성공과 행복에 징검다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새로운 개념의 꿈이랄 수 있겠는데, 그것을 저는 '꿈너머 꿈'이라고 붙였습니다. '꿈너머 꿈'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해도 그 방향이 이타적인 것이면 위대해 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명상센터 건립도 '꿈너머 꿈'의 실현인 셈인가요.

 

"물론입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은 명상센터로만 꿈꾸었던 것인데, 이곳이 다른 사람들의 꿈의 플랫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이곳이 단순히 명상하는 곳에 머물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는 섬광 같은 아이디어를 얻게 하고, 또는 더 멋있는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이룬 다음에 그 꿈이 다시 다른 사람의 성공과 행복의 징검다리가 되게 하는 그런 정거장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아침편지 식구만 260만 명이나 됩니다. 혹시 이런 환경을 정계진출과 연관시키는 시각은 없을까요. 이사장님의 입장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실제 260만 명 회원을 표로 보는 사람도 있고 돈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와 명상센터인 '깊은 산 옹달샘'의 가치를 몇 천억 원의 가치로 보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그러나 이모든 사업들은 문화재단이라는 공적 기구로 모아져 공공의 재산으로 대물림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정치는 이미 접었습니다. 저는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죽는 날까지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에 작은 기여이고 작은 봉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이런 저런 제안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잘 선택해서 여기까지 왔고, 후회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치의 한복판에 있다가 어떻게 갑자기 이런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잡지사와 신문기자로 일할 때도 휴식이라는 것을 모르고 보냈습니다. 인연이 되어 청와대에 들어가 있던 4년 동안에도 단 하루도 휴일 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계시와도 같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건강이 무너져 주저앉아 버렸죠. 정말 치열하게 사는 과정에서 정지된 상태를 경험한 것인데,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이 휴식이었습니다. 그때 시작한 것이 마라톤이고 고도원의 아침편지였습니다. 그런데 휴식삼아서 시작한 이 편지쓰기의 중압감이 만만치 않았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말랑말랑했던 일이 너무 무거워지고, 힘들어졌을 때 접한 것이 명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명상운동가가 되셨군요.

 

"왜 내가 명상을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명상은 엄청난 에너지원이었어요. 그때부터 명상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일을 꿈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비종교적이고 비상업적인 자연친화적인 좋은 명상공간을 만들어놓으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명상은 책읽기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아침편지도 이사장님의 독서와 깊은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저의 책읽기는 목사였던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유산입니다. 아버님이 이름난 다독가이셨는데 가난하고 궁핍해도 책을 사 오셔서 어린 시절 집안이 온통 책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저희들에게 책을 읽고 밑줄을 긋게 하셨어요. 아침편지는 그때 그었던 밑줄이 만들어낸 결실입니다. 책은 제 삶의 일부입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으셨습니까.

 

"몇 권을 읽었는가는 의미 없고, 이렇게 말씀 드릴 수는 있겠군요. 내가 읽고 밑줄 그은 책으로 지난 10년 동안 아침편지를 썼는데, 오늘부터 책 한권 안 읽어도 지금까지 밑줄 그은 것만으로 5-6년은 쓸 만큼의 책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명상'은 세상과 현실 사회, 이런 것과는 떨어져있는 듯하다 생각이 듭니다. 이 시대에 갖고 있는 화두나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소통할만한 통로는 없는 개인적인 그런 의식세계에 몰두해있는 것이 아닌가요.

 

"진정한 명상은 현실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좀 떨어져서 보는 것이지요. 무조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잠깐 멈추는 것이구요. 잠깐 멈추면 우리는 곧 뭔가 뒤처지고 밀리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우주의 원리는 잠깐 멈추어야 오래 멀리 갈 수 있고, 잠깐 멈추어야 높이 치솟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명상이예요. 특히 제가 말하는 명상은 생활명상인데, 생활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걱정할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정치도 경제도 사회적인 문제들도 얼마나 절박한 일들이 많습니까. 그래서 아침편지의 역할이 더욱 필요할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정치상황과 사회문제를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때로는 눈물 흘리면서 때로는 아파하면서. 그런데 침묵하고 있어요. 예전에 많은 수도사들이 세상에 대해 침묵하면서 기도했던 것처럼 하지요. 그러나 마음으로는 지향점이 있으니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주파수를 보냅니다. 걱정되는 일도 많지만 그렇다고 뛰어 들고 싶지는 않아요. 선수로 뛸 목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직접 펜을 들어서 질타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 있을 때마다 오히려 그 생각들을 내려놓고 그것 보다 더 밑바닥에 있는 감사 사랑 긍정 희망 꿈 행복 평안을 생각하며 큰 우물을 파는 마음으로 바탕을 지키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마음을 다집니다."

 

(정치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직접적인 코멘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만큼 정치와는 이제 거리를 두었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사장님의 글쓰기는 정평이 나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매체를 통해서 보니 한수산 씨가 좋은 답을 했더군요. 좋은 소설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인생이 재수 없어야 된다'고 합디다. 역경을 경험하고, 엎어지고 깨진데 또 깨지는 시련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곧 좋은 소설 쓰게 하는 바탕이듯이 좋은 글을 쓰려면 고생을 사서 해야 합니다. 고생한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하면 좋은 글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글공부를 시키지 말고 삶 공부를 시켜야합니다. 고통의 경험, 그리고 자기가 밑지는 경험, 이런 것들이 스토리가 됩니다. 그런데 없는 스토리를 만들려고 하니까, 아무도 읽지 않는 글, 죽은 글이 되지요."

 

-정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글을 쓰시는 이사장님께서도 글이 안풀려질때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아침편지에서도 구상하고 6개월 걸린 것도 있어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명상을 하면서부터 그것이 많이 해소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글을 쓰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짜고 오래 사색했는데, 이제는 안에서 솟아나는 영감이 왔을 때 딱 한 줄로 시작하게 되는, 그래서 글쓰기에 대한 피로감이 많이 사라졌어요. 그것이 명상의 힘이에요."

 

-고향은 이사장님께 어떤 곳입니까. 마음도 몸도 떠나신 것 같은데요.(웃음)

 

"고향은 나무 같은 곳입니다. 언제 가도 그 자리에 있는 것. 삭풍이 불고, 비바람 쳐도 밑동으로라도 남아 있는 것이 나무잖아요. 이렇게 고향을 떠나있지만 제가 힘들고 외로울 때 제 인생에 삭풍이 불면 전주 언저리만 가도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몸은 그렇지만 마음은 떠날 수 없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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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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