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못 사는 건 우리 내부에 원인이 있다"
 
    김삼룡 전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86)는 취재진을 합장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17일 오후 정원 잔디가 곱게 자란 익산시 소재 원불교중앙총부 원로원에서다.임기 3년의 총재직을 내리 5차례 역임한 지역 원로로서 전북의 비전을 인터뷰 2시간 넘게 가슴으로 풀어냈다. 이따금 유머 섞인 반문 화법이었지만 분위기를 긴장시키는 외유내강의 인상이 남달라 보였다. 세상 모든 일이 인과응보의 진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대목에서는 원불교가 모시는 일원상(一圓相)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전북의 현안인 새만금사업도 도민들의 땀과 눈물로 엮어낸 만큼 지역의 미래상으로 내다본 것이다. 문화적 자존심을 세우는 데도 배수진이 없었다. 익산 백제문화 연구의 산증인이다.
그 힘은 어데서 나오는 걸까. "내 평생 여러 가지 일을 해왔으나 원불교에 몸담았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온 거죠. 그게 고마운 거지." 교단의 최고 지도자급인 종사(宗師)로서 신앙 정신으로 철저히 무장된 생활이 지역과 함께 하는 시작과 끝이 없는 연속의 길이었다.
-애향운동본부를 오랫동안 이끌어 오셨습니다. 못다 한 일이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애향운동본부의 설립목표는 이름 그대로 애향인거죠. 애향이란 게 어디 마디가 있나요. 그래서 현재 진행형으로 봐주시면 됩니다."
 
    -도민들의 애향의식은 어떤가요.
"돈 벌면 타 지역으로 이사하는 게 문제죠. 고향을 더 발전시키겠다면 그런 행동이 나올 수 없어요. 고소·고발 사건도 너무 많아요. 당연히 무고가 난무할 수밖에 없지요. 이런 곳에 지역화합이 가능하겠습니까. 전북이 잘살고 못사는 건 우선 우리 내부에 원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요즘처럼 어려울 때 경제발전도 챙겨야 하겠지만 의식개혁이 매우 중요해요. 전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도세가 비교적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긍심과 자신감을 단단히 가져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전북애향운동본부가 막 시작한 '긍정의 힘으로 전북의 미래를 열자'는 정신운동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게 쉽게 되는 건 아닐 텐데요.
"그렇습니다. 정신운동이 쉽게 된다고는 보질 않아요. 하지만 언제, 어떻게, 얼마나 의식전환을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잠자고 있는 듯한 우리 특유의 근성과 도전의식을 되살려 단결한다면 지역발전에 기대하는 만큼 보탬이 될 거예요. 그 꼭지 점에 애향운동본부가 앞장 서야 합니다."
-새만금사업 추진에 많은 공로를 남기셨네요.
"개발과 보전이란 이해가 충돌하면서 힘들었어요. 쓴맛을 느꼈죠. (웃음) 1999년에는 환경단체가 새만금호의 수질오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착공 8년만에 개발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사업 재검토 위기가 몰아친 겁니다. 애향운동부는 사업을 지속시키려고 60만명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와 총리실, 환경부, 해양수산부에 전달했습니다. 직접 마이크를 들고 각 시·군을 돌아다니던 내 모습이 기억나네요."
-그때 일화가 있을 것 같아요.
"한명숙 환경부장관에게 그 서명부를 전달할 때였어요. '새만금사업 지속추진회' 목사님들과 같이 가서 '이 사업은 국책사업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더 멀리 보고 받아들여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요. 그러자 한 장관은 '소위 환경부장관이 환경파괴를 잘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 직책상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냅다 거부하던데요."
-그래서 장관실을 뛰쳐나왔나요.
"아닙니다. 충격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뜸 내가 물었어요. '가을철 농촌은 까치들이 떼로 몰려 사과를 파먹어 한해 농사를 망치는 판에 길조라는 까치를 살려야 합니까, 아니면 사람을 살려야 합니까.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까'라고 물었던 거죠. 돌아오는 대답은 황망해 보였습니다. '총재께서 잘 아니까 판단해보시라'는 거였어요. 장관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것 같네요.(웃음)"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말 아닌가요.
"그래요. 그때는 환경단체들이 방조제가 조성되면 갯벌이 사라지고 환경파괴가 심각해질 것이란 주장이 강했어요. 물론 환경보호는 오늘날 인류가 염두에 둬야 할 지상과제란 걸 모르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런 의견을 결코 무시하면 안 되고, 소홀해서도 안 되는 거죠. 하지만 사람이 집을 짓거나 도로를 개설해서 살아가는 게 더 우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새만금사업은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많은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보는데, 유독 이 사업만 못하게 막고 있는 것으로 보였어요. 갯벌도 그렇지요, 어디 사라졌습니까."
-새만금 현장에 가신 적은 언제입니까.
"수도 없이 가보았고,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찾고 싶은 곳입니다."
-왜 그런가요.
"애착이 많이 가는 걸요. 갈 때마다 변하는 모습을 보면 감회도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거대한 바다가 육지로 바뀌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잖아요.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소원 섞인 노래도 이런 측면일 거예요."
-개발전망은 어떨까요.
"세계인들이 몰려오는 멋진 도시가 되지 않겠어요. 사업지구 일대에 있는 선유도 비응도 비안도 야미도 신시도 등 지명처럼 이름만 들어도 신선들이 신공항으로 대거 들어와 아름다운 새로운 시장(도시)이 생길 겁니다. 새만금은 20년 후면 대한민국에 그치지 않고 세계 속의 중심도시로 변해 있을 거예요. 그 시기는 우리들의 몫으로 얼마만큼 투자하고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삼성의 투자계획을 의심하는 시각이 있던데요.
"그건 의심하는 게 아니라, MOU 체결내용을 제대로 추진하라고 재촉하는 차원일 겁니다. 거대 그룹이 정부와 지역에 약속한 거 아닙니까. 그럼 믿고 추진하는 거예요. 쓸데없이 확대 해석할 이유가 없어요. 틀림없이 올 것으로 믿습니다."
-다른 얘기로 넘어가 보죠. 마한·백제문화연구에 유독 신경을 쓰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계기가 있었나요.
"1973년초 익산 유지들이 우리 대학 박길진 총장을 찾아왔어요. 주변에 문화유산이 깔려 있는데 보존이 안 된다는 거예요. 심지어 탑을 넘어뜨려 돌다리를 만들 지경이란 겁니다.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그해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설립됐어요. 교무처장이던 내가 초대 소장을 맡게 됐습니다."
-그간 괄목할만한 연구활동이 돋보입니다. 미진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설에 대한 보다 확실한 규명이죠. 그러나 익산에는 관련 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왕궁터와 국립사찰터, 성곽과 왕릉 등이 남아 있고, 1970년 일본에서 발견된 관세음신앙 영험기록인 '관세음응험기'를 보면 익산천도 기록이 있어요. 이 정도면 한 때 임금이 살아왔다는 게 명백하지 않는가요. '삼국사기'에 천도사실이 없다는 일각의 의견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 이유가 뭔가요.
"금마·왕궁 미륵사지권역과 웅포일원의 입점리권역으로 대표되는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잠정목록에 등재되고, 지난 2월에는 문화재청이 세계유산 등재 우선추진유산으로 선정했거든요. 그걸 보면 익산이 백제의 왕도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 아닙니까. 천도설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겠지요. 천도사실은 지금 그림퍼즐처럼 하나둘씩 완성되고 있어요. 그래서 새롭게 구성된 세계문화유산등재추진위원회의 활동이 기대됩니다."
-역사유적지들이 상당수 유구로 남아 있습니다. 지상복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1970년대부터 미륵사지를 필두로 왕궁리 유적, 쌍릉, 입점리 고분군, 연동리 석불좌상, 제석사지 등 수많은 발굴이 이뤄지고 있어요.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석탑(서탑)은 2001년 해체가 시작되어 지난해 발굴조사까지 마쳤네요. 복원은 각계의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해체 전 남아있던 6층까지만 부분 복원하는 방안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습니다. 백제문화유산지킴이가 이런 미륵사 복원사업에 대해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어요."
-쉬지 않고 일하시는군요. 아버지로서는 어떤 분입니까.
"나는 몰라요. 허허허.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많은 시간을 같이 못해 미안할 따름이죠. 3남2녀를 길렀습니다. 둘은 대학교수를 하고 있고, 나머지는 사업가, 병원장, 대학 교직원을 하고 있어요. 자식은 비교적 잘 키운 셈 아닌가요. 아이들 교육은 아내가 도맡아서 했습니다."
-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인가요.
"아침 5시에 일어나 원로원 옆에 있는 대각전에서 1시간여 동안 좌선할 때지요. 일상을 벗어버리고 마음에 사무치는 경건함이 해가 갈수록 더욱 소중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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