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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가치 아닌 '존재가치' 토대로 삶의 가치 찾아내야"

조계종 자정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 스님

▲ 세상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쉬운 길은 없다. 도법스님은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기존한 세계관이나 가치의식, 삶의 방식의 길은 아무리 애써 성공적으로 간다 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오히려 계속 문제가 확대 재생산되는 길. 스님은 그러나 존재가치를 중심으로 놓은,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중심에 놓은 삶의 방식의 길은 애써 가기만 하면 반드시 해답이 나오는 길이라고 단언한다. 안봉주기자 bjahn@
"전에는 종교가 세상을 걱정했지만, 지금은 종교 때문에 국민이 근심하고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2010년 여름, 조계종 총무원 화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도법스님이'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21세기 아쇼카 선언'초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다. 세파에 찌들린 사람들의 마지막 안식처인 종교마저도 반목과 다툼으로 혼탁해진 시대에서 대중들은 더 혼란스럽다. 도법스님을 만났다. 삶을 뒤돌아보게 되는 연말이었다. 스님을 만나면 이 혼탁한 시대에 지혜롭게 사는 길이 보일 것 같았다. 전북일보 독자들을 위한 스님과의 본격적인 인터뷰는 두 번째다. 첫 번째 인터뷰는 2003년 겨울, 천일기도를 끝낸 후였다. 그때 스님은 1000일 동안 산문을 넘어서지 않고 하루 네 차례, 다섯 시간 이상 생명과 평화와 민족화해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스님이 기도를 하는 중에도 전쟁이 나고 생명이 파괴되고 갈등과 반목은 깊어갔다. 그 이듬해 3월, 스님은 절집 산문을 나섰다. 생명평화탁발순례로 길 위에서 5년을 났다. 많은 도반들이 함께 했지만, 고행의 여정이었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났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외레 종교간 갈등과 대립이 사회를 더 어지럽히고 있다. 위기에 처한 불교를 세우기 위해 스님이 다시 나섰다. 조계종이 스스로의 자성과 쇄신을 위해 화쟁위원회를 비롯한 4개의 위원회를 통합해 만든 결사추진본부장을 맡고서다. 인터뷰는 스님이 머무르는 실상사가 아닌 서울 안국동 조계종 총무원 결사추진본부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스님은 종단 일을 위해 일주일에 이틀정도 시간을 내면 될 줄 알았는데 일이 일을 물고와 닷새나 실상사 밖에서 서성이게 된다고 했다. 인터뷰 중에도 집무실에는 끊임없이 손님이 찾아왔다. 스님이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자고?"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어디 한번 해봅시다." 활짝 웃는 스님의 얼굴이 불경스럽게도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 같았다. 덕분인가. 조급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새해 초 지면에 모시려니 가장 바쁜 연말에 뵙게 되었습니다.

 

"자잘한 일들이 얽혀서 일정이 편안하지 않았어요. 실상사 가는 것이나 서울 오는 것이나 비슷하지 않나."(잠시 무슨 말씀인가 싶었다. 곧 스님의 웃음으로 먼 길 온 취재진에게 주시는 위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총무원 건물에 붙은 걸개에 유난히 '자성''쇄신''결사'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조계종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결사는 함께 한다는 말인데…그렇겠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화두니까."

 

 

-저희가 새해 인터뷰로 스님을 찾아뵈었을 때가 벌써 8년 전입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건강은 괜찮은 편이에요. 견딜만하면 사는 게 인생이고, 세상이니까. 지금은 견딜 만 한 것이겠죠."

 

 

-최근에 결사본부의 '종교평화선언'이 논란이 되고 있더군요. 선언 이름에 21세기 아쇼카 선언이란 부제가 붙어있던데요.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녜요. 선언문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종교 갈등문제가 심화되어있습니다. 그동안은 이 문제를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에 하나하나 대응하는 방식으로 다루어왔어요. 그런데 그것이 효과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갈등을 양산하는 결과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선언은 불교는 불교다운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입니다. 평화적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불교 정체성에도 맞고 또 시대정신에도 합당하니까요."

 

 

-선언문의 내용을 보면 '화쟁(和諍)'이 부각되던데요. 비단 종단 내부의 문제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실천적인 현장에서도 그런 '화쟁'의 논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이죠. 화쟁의 개념에 이론체계를 세우고 제시한 분이 실천적 사상가인 원효스님입니다. 당시 불교자체 안에는 화엄종 법화종 선종 교종 열반종 천태종 등등 종파주의적 갈등과 대립이 첨예했어요. 이 갈등과 대립을 어떻게 화해시키고 평화롭게 함께 하도록 할 것인가 논리를 제공한 것이 화쟁론입니다. '화쟁'은 다툼을 화해시키고 평화롭게 함께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실하게 회복해야 자성과 쇄신의 대상과 내용은 무엇일까요.

 

"자기 자신에게, 인간에게, 또는 우리가 살고 있고 만들어가는 이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정직하고 진지하게 묻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올바른 가치관의 상실이예요."

 

 

-언젠가 스님 스스로 회색분자라는 말씀을 하셨던데요. 좀 놀라웠습니다.

 

"내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사람들은 나를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으로 분류합니다. 그래서인지 별로 개혁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은 조계종 총무원장의 임명을 받는 위원회 위원장이나 결사본부장을 맡는 나에게 '색깔이 뭐냐, 정치색이 뭐냐'고 묻기도 하죠. 그러면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회색분자고 갈지자 행보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나 같은 회색분자를 어떻게 조직화해내고 세력화할 것인가라구요."

 

 

-기꺼이 회색분자가 되겠다는 말씀이군요.

 

"(웃음)실제 나는 그렇게 살아왔어요. 나는 문제를 풀어 가는데 이것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면 이쪽으로 가기도 하고, 저쪽으로 가기도 하고, 왔다 갔다 했어요. 제도권으로 가기도 하고 제도권 밖으로 가기도 하고.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제대로 안보는 것 같아요. 자기들의 입맛대로만 보는 것 같거든."

 

 

-탁발순례하시는 동안 무엇을 얻으셨고, 대중들에게는 무엇을 주셨는지요.

 

"생명평화운동은 21세기 대안 문명운동입니다. 생명평화를 담론화하고 문화화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탁발순례였죠.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 생명평화는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생명평화운동을 한 사람들과 탁발순례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노력을 통해서 생명평화라고 하는 개념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봅니다. 이제 생명평화라고 하는 가치가 삶이 되고 문화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과제예요."

 

 

-어떤 삶을 살아야 그것이 가능할까요.

 

"단순 소박한 삶과 공동체적 삶입니다. 이런 삶이야말로 21세기 대안적 삶으로서 가장 바람직해요. 서로 분열하고 불신하고 갈등하고 대립해 삶이 황폐화하는 이런 현실에서 문제를 극복해 공존과 평화로운 삶을 가능하도록 하려면 그런 마을 공동체 정신이 생활화되고 사회화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21세기 미래를 희망적으로 만들어가는 길이기도 하구요."

 

 

-이런 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해오신 것 아닌가요. 그 결실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많이 약해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가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우리 역량과 여력이 약해서 효과적으로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여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하나는 추진하는 주체들의 역량과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여력이 약하더라도 지자체나 지역주민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 깊은 이해나 인식, 관심과 열정이 있으면 훨씬 잘 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죠."

 

 

-의외입니다. 이미 지리산 생명평화운동이나 공동체운동은 모범이 되어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모으고 있지 않습니까.

 

"공유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치단체는 여전히 20세기식 가치 의식들과 방법론을 갖고 이런 환경을 다룬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생명평화의 조건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친환경적인 농업 먹을거리죠. 그런데 현실을 보면 친환경적인 형식이나 친환경적인 먹을거리 생활 소재를 중요하다고 다루면서도 궁극적인 답은 자본의 논리에 두고 있거든요. 에리히 프롬 식으로 말하자면 소유 가치를 중심에 놓고 삶의 문제를 바라볼 것인가, 존재 가치를 놓고 볼 것인가의 문제예요."

 

 

-물론 지금은 소유의 가치가 존재의 가치의 우위에 놓여있는 형국이지요.

 

"소유 가치를 중심에 놓고 삶의 문제를 바라보고 다루어 온 것이 20세기까지의 가치 기준과 삶의 방식이었다면 그 한계와 위험이 지금 정점에 와있습니다. 21세기 새로운 대안은 소유의 가치가 아니라 존재 가치를 중심에 놓고 그 존재가치에 토대한 삶의 가치를 찾아내고 만들어내야해요. "

 

 

-스님 말씀 들으면서도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세계관이나 가치의식, 삶의 방식으로는 아무리 애써 성공적으로 간다 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계속 문제가 확대 재생산되는 길이죠. 그러나 우리가 대안으로 이야기하는, 존재가치를 중심으로 놓은, 생명과 평화를 중심에 놓은 삶의 방식의 길은 애써 가기만하면 반드시 해답이 나오는 길입니다."

 

 

-출판기념 기자회견에서 스티븐 잡스를 보현행(普賢行)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하셨던데요. 요즈음 주목받고 있는 안철수 교수는 어떻게 보십니까. 안교수의 정치진출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 삶은 정치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정치는 당연히 필요한 일이고 잘 해야 할 일이죠. 누구든지 정치를 정말 잘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를 제대로 잘 하면 우리 사회가 정말 좋아지지 않겠어요. 역량 있고 뜻이 있는 분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고 훌륭한 역할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요. 안교수가 정치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에는 장점이 많은 사람인 것 같더군요. 사람이 선하다는 장점이 있고, 사심이 많지 않다는 것에 관심이 갑디다. 자기 성과를 사유화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덕목이죠. 정치를 잘할 수만 있다면 개인적으로 보다도 국가와 사회를 위해 당연히 하는 것이 맞는다고 봐요."

 

 

-스님의 말씀에 공감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상사에는 박원순서울시장도 자주 찾아왔었지요. 박시장의 진출은 어떻게 보십니까.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봅니다. 박시장의 선택은 개인의 정치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시민사회 진영을 포함한 대중적 필요성과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그것을 반영한 것이지요. 그래서 대단히 건강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잘했으면 좋겠고 그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삶을 강조해오셨고, 또 그것의 실천을 강조해오셨는데, 스님과 함께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세계관과 가치의식이 바로 서야 합니다. 소유 가치를 중심으로 놓은 세계관이나 삶의 방식이 아니고 존재가치를 중심에 놓는 세계관이나 삶의 방식으로 정리가 되어야만 이 새로운 길을 함께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예전에 새만금이야기가 나왔을 때, 전북은 민주주의가 실종되었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새만금을 놓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을 독재라고 하셨지요.

 

"새만금은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한계가 낳은 결과입니다. 전라북도는 21세기적 중요한 가치를 너무 많이 잃었어요."

 

 

-지금이라도 그런 가치를 찾는데 눈을 돌리면 아직 희망이 있지 않겠습니까.

 

"전북을 한번 보죠. 땅이 큰가요. 인구가 많은가요. 자원이 풍부한가요. 결코 아닙니다. 지정학적인 위치로도 유리한 조건이 아닙니다. 그러니 정치적 영향력이나 경제적 힘 같은 현대사회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조건들이 형성될 수가 없죠.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불리한 조건을 놓고 희망적인 해답을 찾아야 한다면 이 조건에서 중요한 장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는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문명사적으로 생명가치를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생태적 가치, 생명가치가 시대정신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전북은 대단한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생명가치를 중심에 놓고 보면 지역, 변두리, 작은 것이 갖는 의미가 대단히 크죠. 전북은 '지역이고 변두리고 작은'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이 시대는 정신적 가치를 요구합니다. 전북은 종교성이 남다른 지역입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21세기의 중요한 가치를 다 갖고 있는 곳이 전북이 아닐까요. 이런 것들을 잘 가꾸어내는 것이 전라북도 스스로를 위해서 바람직하고 한국사회에서도 그렇게 했을 때 전북의 존재가 빛나고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새해 덕담 한 말씀.

 

"내 인생도 고단해 죽겠는데 누구한테 덕담을 하나.(웃음) 희망은 어디 있지도 않고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희망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자기 성찰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해요. 성찰의 삶을 통해 거품은 걷어내고 환상은 깨고, 참된 가치들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희망이 길이 열리게 됩니다."

 

 

-성찰의 시간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나요.

 

"가장 좋은 방식은 걸음을 생활화하는 것입니다. 묵묵히 걷는 시간을 온몸을 써서 걷게 되면 내 생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고 정상적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기 소리를 더 충실하게 많이 듣게 되고, 그 들음을 통해서 쓸데없는 거품이 걷히기도 하고, 환상이 깨지면서 삶의 참된 가치들이 현실로 작동하게 되지요."

 

 

스님은 현대의 직장인들에게 출퇴근 시간을 걷기로 활용해보라고 강권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것이 첫째 이유고, 에너지 소비를 줄여 환경을 지킬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데다 무엇보다도 생명이 왕성하게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문제를 훨씬 잘 보고 길을 얻게 해주어 삶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걸음을 생활화하는 것이 곧 성찰의 삶을 가꾸는 것'이라는 스님의 가르침은 독자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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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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