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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대 교수 前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창극, 보편적 음악극으로 서야 우리시대의 공연양식 된다"

▲ 유영대 교수는 창극이 극복해야 할 요소로 '적당히'와 '즉흥성'을 꼽는다. 유 교수는 즉흥성이야말로 창극이 우리시대와 호흡할 수 없는 아주 심각한 한계라고 말한다. 안봉주기자 bjahn@

콘텐츠의 시대.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가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창극도 그중의 하나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창극은 적어도 우리음악분야의 '오래된 미래'라 할만하다. 창극의 뿌리는 물론 판소리다. 최초의 창극 '은세계'가 1908년 원각사에서 올려진 이후 창극은 1950년대 말까지 가장 인기 있었던 공연예술이었다. 우리 전통문화가 말살되었던 일제강점기, 창극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어찌됐든 당시 창극은 대중들의 삶을 위로하는 통로였다. 그러나 새로운 대중문화가 밀려들면서 창극은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설자리를 잃은 창극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국립창극단이 만들어진 것이 1962년. 그렇게 보면 창극은 100여년 역사동안 부침은 있었으나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적자의 자리를 그대로 지켜온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의 무대에서 창극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우리의 양식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신명은 있는데 왜 감동은 그 신명에 미치지 못할까. 비장함은 있는데 집중되게 하는 힘은 왜 약할까. 경지에 이른 소리꾼의 절창에 가슴 뜨거워지면서도 왜 무대는 끝내 낯설까. 그 답을 구하고 싶었다.  유영대 국립창극단 전 예술감독을 만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유영대 교수(57·고려대)는 지난 연말,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에서 물러났다. 연임으로 6년이란 시간을 온전히 '우리시대의 창극'을 만들어내는 일에 바치고 난 후다. 그는 그동안 쏟아온 열정만큼이나 치열하고 단호하게 판소리와 창극의 미래를 진단하고 예견했다. 그로부터 얻은 우리 창극의 미래는 명쾌했다. "창극이 보편적인 음악극으로 서야만 우리시대의 공연양식이 된다."  인터뷰는 지난 6일, 그가 몸담았던 국립극장 창극단 예술감독실에서 있었다. 사무실 비좁은 공간은 아직 정리하지 않은 그의 살림살이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며 '창극'의 길을 모색해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온갖 자료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연임하셨으니 6년이군요. 장기집권인 셈인데, 시원함과 섭섭함 어느 쪽이 먼저인가요.

 

"12월 말로 끝났으니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새 예술감독이 정해지지 않은데다, 지난해 '한국의집'과 함께 제작했던 '몽유도원도'를 다시 제작하는 일정으로 여전히 창극제작 현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몽유도원도'는 지난해 관광 상품으로 호평을 받았었던 작품이죠. 그래서 그런지 볼거리는 있었으나 서사적 구조, 역사적 관점이나 텍스트로서의 의미 전달은 좀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랬죠. 관광객들을 위한 무대여서 볼거리 중심으로 만들다 보니 내러티브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이번 다시 제작하는 작품은 완결된 구조의 예술성을 온전히 갖춘 창극으로 제작할 계획입니다."

 

 

-한국콘텐츠 진흥원이 제작 주체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콘텐츠진흥원에서 이 작품을 보고 3D같은 첨단의 공연기법과 기술을 접목시켜 제작해보자는 제의를 받았어요. 대형극장에서 현대적인 IT 기술을 접목시켜서 만드는 창극무대는 꼭 해보고 싶었던 양식입니다. 콘텐츠는 우리 것이지만 새로운 영상기법을 도입해서 무대를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어내는 이 작업을 통해 '법고창신'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몽유도원도'는 사실 창극 작품으로는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되거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창극은 전통적으로 행복한 결말에 익숙해있죠. 판소리 다섯바탕이 배경이 되는 창극이 모두 그렇잖습니까. 인과응보와 권선징악, 파사현정 같은 주제들이죠. 그런데 이 작품은 안평대군과 궁녀, 무사의 관계를 통해 '사랑'의 실체를 다룹니다. 그 결말은 매우 비극적이지요."

 

 

-사실 그동안 공연되었던 창극의 주제도 한정되어 있지만 창극의 양식이 오늘의 관객들과 호흡하기에는 좀 생경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창극이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물론입니다. 다만 창극의 미래는 이 공연양식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달려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극장으로 들어온 창극은 확실하게 보편적인 음악극 양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실험적인 양식들이 많이 시도되었지만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거든요."

 

 

-그런 점에서 교수님께서 창극단 예술감독을 맡게 되면서 시도했던 일련의 양식들은 어떻습니까.

 

"2006년에 예술감독을 맡았어요. 그 전에는 창극공연을 즐겨보았고, 그래서 창극 평론을 많이 했습니다. 전공자들과 창극을 주제로 세미나도 많이 했는데 결론은 늘 '창극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창극은 죽어있는 장르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 대세였지요."

 

 

-국립창극단만도 50주년 역사에서 그런 결론은 암울하군요.

 

*그렇지만 현실을 보면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창극단을 맡고 보니 많은 시도가 있었다고 해도, 오늘의 무대 양식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고정된 창극의 전통적 무대 양식은 그대로 고수하다보니 살아있는 장르, 관객과 호흡하는 장르로서가 아니고, 오히려 고리타분하다는 인식만 높여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애호가들은 향수가 있으니까, 의미있었겠지만요."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창극단 예술감독 프러포즈가 왔었을 때 고민했던 것이 그것이죠. 이 장르를 과연 내가 새롭게 살려볼 수 있을까. 그래도 소명처럼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포기하자 했어요. 국악인이라면 몰라도 제 경우는 판소리 연구와 평론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에 좀 더 자유롭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처음에 내세우셨던 <우리시대의 창극> 이라는 아젠더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맞아요. <우리시대의 창극> 은 제 임기 동안 일관되게 내세웠던 아젠더입니다. 창극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 속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절실했거든요. 그동안의 창극 무대를 냉철하게 보자면, 대부분 1500석 극장에 한 몇 백 명 관중 모여서 보다가 '얼씨구나 절씨구나' 노래 나오면 다 흩어져 가버리는 공연을 2-3일정도 하면서 한해를 보내는 식이었거든요. 물론 어떤 해는 완판창극 같은 것을 기획해 관객을 끌어모은 적도 있었지만 그런 시도들이 근본적으로 창극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고는 못합니다. 동시대의 관객과 호흡하기에는 그런 양식들이 미흡했기 때문이예요."

 

 

-그렇다면 그동안의 작업에서 '우리시대의 창극'의 길을 찾으셨습니까.

 

"6년 동안 적지 않은 작품들을 올리면서 늘 보편적인 음악극으로서의 창극을 지향했습니다. 창극은 극장 안으로 들어온 이상, 극장에서 이루어지는 정형화된 작품이어야해요. 그런데 극장이라는 것은 꽉 짜여진, 그래서 조명이나 이런 것들도 아주 긴밀하게, 또 무대도 밀도 있게 드나들고, 음향도 적절하게 쓰여져야합니다. 그런데 우리 작품의 대부분은 주먹구구식이었죠. 서양의 공연예술들이 가장 첨단을 달리고 있는 그 순간에도 우리 창극은 '적당히'와 '즉흥성'에 의존했어요. 극장을 선택했으면서도 우리 전통극 양식인 마당의 형식을 놓지 않았죠. 좋게 말하자면 '자유롭고 즉흥적'인 마당극의 요소가 마치 창극의 본령인 것처럼 인식되었지요. 저는 이것이야말로 창극이 우리시대와 호흡할 수 없는 아주 심각한 한계라고 봅니다."

 

 

-좋고 나쁨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즉흥성과 현장성은 우리음악 양식의 독창적인 특성일 수도 있을텐데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창극은 극장의 공연양식이어야 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마당극은 무대와 객석이 구분 자체가 없는 열린 공간이지요. 그러나 극장은 무대와 객석 자체가 완전히 분리된 공간입니다. 공간이 달라졌으니 그에 맞는 양식을 만들어야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어떻게 그 과제를 실현했는지 궁금합니다.

 

"극장 안으로 들어온 이상, 엄격한 규제, 양식화된 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취임하면서는 아예 그렇게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내세운 아젠더도 <우리시대의 창극> 이었고요. 동시대 관객과 호흡해야 한다는 것, 특히 젊은 관객과 더 많이 호흡해야 한다는 것은 제가 생각하는 가장 절실한 과제였습니다. 일단 작품의 주제부터 생각했죠. 대본을 다시 쓰고 작품도 해체해서 복원했습니다. 음악도 그동안의 수성반주 위주에서 벗어나 국악관현악을 아주 적극적으로 결합하게 하는 음악극으로 재편했어요. 그동안의 창극에서 음악은 수성반주의 확대 재생산이었는데 그것은 오히려 소리를 방해하거든요. 그 다음은 춤을 유기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춤이 장식적으로 존재하게 하지 않고 기능하게 했어요."

 

 

-작년,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아힘이 국립창극단과 '수궁가'를 연출해 화제가 되었었는데, 그 작업 역시 이러한 양식의 지향과 관계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런 작업, 보편적인 음악극으로 창극을 만들어가려했던 결정작이 아힘의 <수궁가> 라고 할 수 있어요. 아힘과의 작업은 우리 창극의 세계화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해 국립극장 공연 이후 독일 부퍼탈에서 3회 공연을 했는데, 모두 매진된데다 호평을 받았습니다. 물론 제작 과정에서 한국적인 선율이 너무 배제되는 등의 문제점으로 약간의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보편적인 음악극으로서의 틀을 정착시켜 가는데 아주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6년 동안 많은 작품을 제작했는데, 그래도 가장 대중적인 성공작은 역시 '청'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청'은 100회 공연. 10만 명이 보았어요. 뮤지컬 명성황후 경우, 100만 명이 보았다고 하니 그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지만 창극으로서 100회 공연 10만 명 관객은 창극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였어요. 그 작품은 우리가 선택한 양식을 통해 자신감을 갖고 진행한 어떤 기준자이기도 합니다. 그 이듬해 똑같은 관점으로 제작한 것이 <춘향> 인데, 주제의 관점을 새롭게 한 것이나 관현악과 춤을 작품 속에서 기능할 수 있게 한 좋은 무대로 평가 받았습니다. 창극을 현대의 공연예술에 합당한 공연예술로 만들어간 예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진행해온 과정에서 창극의 가능성을 확인한 유 교수는 국립창극단에 또 하나의 선물을 남겨놓았다. 모든 작품의 제작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제작일지다. 악보부터 무대치수, 소품, 공연사진, 제작예산, 관객 수와 배우들 출결 상황까지도 촘촘히 기록한 제작노트는 창극을 보편적 음악극으로 만들어가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창극의 새로운 미래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졌다. 그 가치를 발견하는 일은 이제 이 시대를 사는 관객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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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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