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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꾼다

신형복 '나무야 나무야'…이병초 시인 서평

 "세상이 나를 절망시키고 어떻게 인간을 믿고 살아야 하느냐는 마음이 솟구칠 때마다 책상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정읍 출신 소설가 신경숙씨에게 책읽기는 갑갑한 세상의 탈출구였다. 책이 독자를 치유하기에 앞서 작가 자신에게도 위로가 됐다는 뜻이다. 새로 연재되는 '책과 만나는 세상'은 매주 금요일 글을 쓰는 작가들을 열혈 독자로 만든 보석같은 책들을 만나보는 자리다. <편집자 주>

집 근처에 성작산이란 작은 산이 있다. 산봉우리가 다섯 개라서 봉동 사람들은 오봉산이라고도 부른다. 목숨의 필수요소처럼 골칫거리가 생길 때마다, 생머리 지끈거리게 하는 요것도 내 복인가 싶을 때마다 나는 이 산에 오른다. 그리고 정상에서 어떤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돌탑들을 늘 만난다.

 

산행을 즐기는 사람일수록 생활의 이쪽저쪽에 이악스럽게 들어붙는 것들을 병든 고추 따내듯 뚝뚝 떼버리는 일이 많다고 들었는데 사정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아무 산에나 올라가봐도 산 굽이굽이며 정상에는 이루지 못한 소망들처럼 돌탑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내 월급봉투가 얇은 것도 물론 고민해봐야 하지만 어째서 이 땅의 월급봉투는 평등하지 못한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육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소망인지 욕심인지 모를, 시도 때도 없이 꿈틀거리는 욕망이 쌓아놨을 돌탑들을 볼 때마다 이번에는, 저들의 이번 생애에는 소망이 몽당빗자루처럼 술이 죄다 빠진 채 아무데나 함부로 처박히지 않기를 나는 바랐다. 이악스럽게 꾸려낼 것보다 버릴 게 더 많아지기를 나에게도 바랐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우랴. 경제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은 정비례할 것이라고들 했지만 디지털 시대를 지나 문화산업시대의 지금 우리는 정말 그런가. 행복해지기는커녕 사람들은 더 바쁘기만 하다. 발전된 경제ㆍ문화산업에 맞춰 살아야하기 때문에, 절약이 미덕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문화나 역사 그런 것 몰라도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그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노동을 하는 신성한 현장을 '생활전선'이라고 했다. 전선戰線이란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를 죽이는 집단적 살육의 현장을 지칭하는 용어인데도 말이다.

 

언제부터 이 끔찍한 말이 거리낌 없이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 속에는 열악한 노동 조건을 뚫고 땀방울을 흘리는 고귀한 노동력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료가 동료를 경쟁자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더 깊숙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알다시피 인간의 이기심을 자극해서 성장한 게 자본주의 아닌가.

 

문화산업이란 게 끝도 없이 만들어대는 신제품들을 우리는 개가 제 좆 물듯 또 사줘야 하지 않은가.

 

벌은 만큼 쓰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 아직 안 벌은 것조차 카드빚 내어 쓰라고 종용하고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료가 경쟁자가 되어야 하는, 이미 모든 게 물화된 이따위 너절한 것을 '삶'이라고 해야 하는 엄연한 현실을 포기할 수는 없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각본을 미리 짜놓고 대다수의 사람들을 물질적 수단으로 핍박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문제들을 신중하게 물고 있는 책이 있다. 사회가 필시 막되어가더라도, 자신의 소중한 신념이며 소망을 돌탑 쌓듯이 정성스레 쌓아올리는 진지한 자세가, 근본도 모르고 자본으로만 쏠리는 사회에 희망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책. 신영복 선생의'나무야 나무야'(돌베개·1996년)가 그것이다. 기행문 형식을 빌려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함이, 유명 관광지에서 이만큼 비껴 서서 역사와 현실을 가려보고 제대로 펴놓으려고 애쓴 흔적이 삶의 진정성과 맞물려 글을 읽는 자의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저자는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라는 한 줄을 본문이 시작되기 전 쪽에 통째로 들여 적어놓고 있다. 지금까지 꾸어왔던 꿈 말고 이제부터는 다른 꿈을 꾸고 살아야 한다는 듯이.

 

/이병초(시인·웅지세무대 교수)

 

 

△ 이병초 시인은 1998년'詩眼'으로 등단. 시집'밤비''살구꽃 피고'를 펴냈으며, 제2회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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