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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요리품평서' 익산 함열서 쓰였다…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

전국 돌며 맛보았던 진귀한 음식 소개 "백산자는 전주, 약밥은 경주가 명산물"

 

나는 자칭 올리브 마니아다. 몇 해 전 다녀온 터키, 스페인, 포르투칼에서 생애 처음 맛본 올리브 맛에 반해 지금은 밥상에 김치와 나란히 올리브를 두고 먹을 정도다. 여행을 하며, 입맛에 맞는 요깃거리를 찾았다는 행운과 더불어 3대 건강음식이라는 올리브의 참맛을 알게 된 것도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맛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맛있는 음식은 나라, 인종, 나이 등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 같다. 그리스의 한낮 인사말은 '칼리오렉스(맛있게 드세요)'이다. 기원전 330년 세계 최초의 요리책 아케스트라토스가 그리스 작품이라는 사실이 순순히 인정된다.

 

△ 조선 최초의 음식칼럼니스트 허균(許筠)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이 지은 조선시대 최초의 음식 품평서 '도문대작'. 허균이 요리 칼럼을 썼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이 책이 익산의 함열이라는 고장에서 조선 최초로 집필됐다는 사실도 주목하게 된다.

 

유배지에서 자신이 전국을 돌며 맛보았던 음식이 그리워 기록해 놓은 각종 요리와 식재료 130여 종이 담긴 '도문대작' 속 진귀한 음식을 맛보았다.

 

허균(許筠)은 29세에 장원급제하여 이듬해 황해도 도지사가 되지만 한양 기생을 가까이 했다는 이유로 파직된다. 그 후 여러 차례 벼슬길에 진출하지만 번번이 파직당한 후 산천을 유람하며 기생 계생과 가까이 지내기도 하고, 시인 유희경과도 친분을 유지하며 인간관계의 폭을 넓힌다. 그러다 1609년 첨지중추부사가 되고, 이어 형조참의가 되지만 이번에는 과거시험에서 조카사위를 부적 합격시켰다는 이유로 전라도로 유배가게 된다. '광해군일기'에는 허균이 죄를 자백하여 전라도 함열 땅에 정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광해군 3년(1611년 1월)이었고 그의 나이 43세다. 당시 함열 현감이었던 한회일(인조비 인열왕후의 오빠)이 그와 밀접한 관계였기에 함열 객사에서 생활했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함라 어린이집 일대를 옛관아터로, 함라파출소 자리는 옛 감옥 자리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함열현'에서 1613년까지 머물면서 '도문대작'이란 음식 관련 책을 쓴다.

 

 

△ 도문대작(屠門大嚼) - "푸줏간의 문이나 바라보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달랜다"

 

허균은 함열에서 1년여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옛 글을 정리한 '성소부부고' 64권을 저술했으나 지금은 26권만이 전해진다. '성소부부고'는 '장독을 덮을 정도의 하찮은 책'이라는 겸손한 뜻을 지니고 있다. 시(詩)·사(辭)·부(賦)·문(文)외에 조선 최초의 요리품평서 '도문대작(屠門大嚼)'이 실려 있다. 도문대작은 이 '성소부부고'에 실려 있다.

 

'도문대작'은 고기를 먹을 형편이 못 되어 "푸줏간의 문이나 바라보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달랜다"는 뜻으로 유배된 처지로 음식을 부러워하는 자신을 가리킨 말이다.

 

귀양을 온 허균이 귀양지에서 그간 자신이 먹어본 팔도 음식들을 지역별로 기록한 책으로,조리서가 거의 없던 조선 중기 팔도 음식을 기록한 것이라 사료적 가치가 높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서문이다.

 

'조선시대 남성 학자들이 식생활에 대해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며 경계의 글을 남기고 있다. 팔도뿐 아니라 해역에 따른 수산물의 특색과 이를 이용한 젓갈, 포까지도 소개하고 있다.

 

 

△ 맛있는 책 도문대작

 

"내가 풍악에 구경 가 표훈(表訓)사(寺)에서 자게 되었는데, 그 절의 주지가 저녁상을 차려 왔다. 상에 떡 한 그릇이 있었는데 이것은 귀리를 빻아 체로 여러 번 쳐서 곱게 한 뒤에 꿀물을 넣어 석용(石茸: 석이버섯)과 반죽하여 놋쇠가루에 찐 것인데, 맛이 매우 좋아 찹쌀떡이나 감떡보다도 훨씬 낫다"

 

허균은 대단한 미식가였다. '도문대작'에는 병이류 11종목, 채소와 해조류 21종목, 어패류 39종목, 조수육류 6종목, 기타 차 술 꿀 기름 약밥 등과 계절에 따라 만들어 먹는 음식 17종을 부기하였다. 도문대작에서 소개하고 있는 맛있는 요리를 보자.

 

'방풍죽은 강릉, 석이병은 표훈사, 백산자는 전주, 다식은 안동, 밤다식은 밀약, 차수(叉手:칼국수)는 여주, 엿은 개성, 웅지정과(熊脂正果)는 회양, 콩죽은 북청의 것이 명물이다.'

 

경상우도의 상인이 전복을 말려서 꽃모양으로 오리거나 얇게 저미는 화복(花鰒)을 만드는 기술에 능하다고 소개하였다. 조수육류에서는 웅장(熊掌·곰의 발바닥), 표태(豹胎·표범의 태), 녹설(鹿舌·사슴의 혀), 녹미(鹿)尾·사슴의 꼬리). 방풍나물로 끓인 방풍죽. 한 번 먹으면 달콤한 향기가 입안에서 사흘을 간다는 방풍은 평양의 냉면, 진주의 비빔밥 등과 함께 팔도의 대표 음식으로 꼽힌다.

 

'허균은 책에서 강릉의 해안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방풍으로 끓인 것이 아니면 그 맛이 안 난다고 했다.

 

'도문대작'에는 각종 음식과 함께 그 음식의 명산지가 나와 있다.

 

'병이류에서 소개한 대만두는 보만두라고도 불리며 자잘한 만두들을 거대한 만두피에 한데 넣고 다시 한번 복주머니처럼 묶은 음식으로 평안도 의주 지방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만큼 대만두를 잘 만든다. 백산자(박산. 쌀로 만든 백당을 고물에 묻혀 먹는 한과)는 전주, 석이병은 금강산, 다식은 안동, 엿은 개성, 약밥은 경주 등이 잘한다.'

 

여러 품목에 관하여 식품의 소재뿐 아니라 그 식품에 관한 음식관습까지 언급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는 점을 지적하면서 먹는 것은 우리 몸과 생명에 연관된 아주 중요한 것임을 강조했다.

 

 

△ 음식 속에 진리를 찾다

 

"먹는 것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다. 더구나 먹는 것은 생명에 관계된다. 선현들은 먹을 것 바치는 자를 천하게 여겼지만, 그것은 먹는 것만 탐하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를 비난한 것이지, 어찌 먹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고 한 것이겠는가."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음식 타령만 한 것이 아니다. 먹을 걸 절약하지 않는 현달한 자들에게 부귀영화가 무상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려고 하였다.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라며 소박한 식사를 추구했던 정약용 같은 이가 있었던 반면, 자신을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자백하는 허균 같은 이도 있었다.

 

공자는 '논어(論語)' '리인'(里仁) 편에서 "선비로서 도에 뜻을 두고도 낡은 옷과 거친 밥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는 더불어 도를 논의할 수 없다"고 가르쳤지만 허균은 "선현께서 음식을 위하는 자를 천하게 여겼지만 그것은 이익을 탐하고 주창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지 어찌 음식을 폐하고 말라지도 말라는 것이겠는가?"라고 해석했다.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짧게나마 음식에 얽힌 그의 개인적인 추억부터 당시의 풍습가지 기록되어 있어 더욱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음식에 관한 책이 거의 전무했던 조선시대 중기, 당시 상류계층의 식생활과 향토의 명물을 일별할 수 있다. 17세기의 우리나라 별미음식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김진아 문화전문시민기자

 

(익산문화재단 경영기획실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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