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신춘문예 당선자 염연화씨가 본 박효미의 '오메 돈벌자고?'
전나무집 큰딸 가희의 방학은 따분하게 시작되었다. 가희는 방학한 지 3주가 지나도록 따뜻한 아랫목에서 마음껏 게으름을 피웠다. 벼농사와 양파농사를 망친 부모님은 어느 날 동생 나희방에서 연탄을 빼버린다. 깔끔쟁이, 잔소리쟁이 동생 나희와 한 방을 써야 한다니! 가희에게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나희를 다시 제방으로 쫓아내기 위해 백만장자를 꿈꾸게 된 가희. 얼음꽝에 모여 노는 남자애들에게 입장료를 받아내는 기막힌 아이디어로 가희의 백만장자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가희는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까?
책이 아닌 현실로 돌아와서, 2013년을 사는 대한민국 김대한 어린이의 겨울방학. 어쩌다 친구들이 놀러왔다. 무얼 하고 놀까? 블루마블, 체스 따위의 보드게임은 시시하다. 감성을 건드리지 않고 그저 귀와 눈을 어지럽게 하는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 게임이 좋다. 대한이와 친구들, 한 방에 있지만 각자 따로 논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손가락,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손가락이 바쁘다. 게임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입에서 거친 말들이 튀어나온다.
"친구끼리 만나서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고 있니?"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준 엄마가 잔소리를 쏟아낸다. 하지만 딱히 무슨 놀이를 할까?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인, 흙이라곤 디뎌볼 수 없는 밖으로 나가 금을 긋고 땅따먹기를 할 수도 없는 일. 자치기, 팽이치기, 구슬치기도 어른들이나 기억하는 추억의 놀이일 뿐. 어느새 아이들의 학원 수업 시간이 된다. 대한이와 친구들은 각자의 학원으로 흩어진다.
'방학'(放學)이라는 한자말을 들여다보니 '놓을 방', '배울 학'이다. 배움을 놓는 것, 학문으로부터 놓여나다는 뜻으로 풀어진다. 정말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책가방을 내던지고 신나게 노느라 바쁜(?) 방학을 보내게 해 주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방학동안 선행학습에서 자유로운 아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뜻 그대로의 배움을 놓는 것이 아닌 다음 학기, 다음 학년에 배울 책을 펼쳐야 하는 방학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방학의 뜻이 배움을 '놓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먼저 '드는 것'이 되어 버렸다.
책 속의 가희는 방학 내내 실컷 놀고도 더 놀고 싶다. 개학이 다가오는 게 섭섭하다. '오메 돈 벌자고?'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오메 벌써 방학이 끝나부러야?'하는 아쉬움으로 끝난다. 백만장자의 꿈은 온데간데없고 놀이의 재미에 푹 빠진 가희를 따라다니며 깔깔 웃었다. 나도 방학이면 책 속의 가희처럼 신나게 놀았기 때문이리라. 땅거미가 질 때까지,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골목에 울릴 때까지… 공감한다는 것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어른들이여, 아이들에게 미안해지자. 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신나게 놀 권리를 빼앗아간 어른들에게 먼저 이 책을 권한다.
※ 아동문학가 염연화씨는 광주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으며, 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 아동문학 부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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