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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잡혀간 조선 국왕의 투구를 보다

혜문 스님 문화재 제자리찾기 대표

한마디로 좀 놀랐다. 지난 1일 설레는 마음으로 도쿄 국립박물관 동양관 전시실을 들어 섰을 때, 그토록 바라보고 싶었던 조선 국왕이 착용한 '대원수 투구'가 전시돼 있었다. 조명을 받아 빛나는 황금 용문양과 백옥 장식을 넘어서 거기에는 분명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투구를 직접 보기 직전까지 이것이 조선왕실에서 대대로 고종까지 전래된 '조선 대원수 투구'임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약간의 비아냥거림을 섞어서 질문하던 기자들조차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투구에 서린 장엄한 아우라는 군신(軍神)의 수호가 함께 하는 제왕의 투구임을 분명히 느끼게 했다. 국내에는 한 점도 존재하지 않았던 완벽한 형태의 투구를 결국 찾아 냈구나! 바로 이 투구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데 무려 3년의 노력이 필요했다. 돌이켜 보면 기적과 같은 사실의 연속이었다.

 

■ 일본 도굴왕 목록서 '임금 투구' 확인

 

2010년 10월'조선왕실의궤 반환 절차'의 마무리 작업을 위해 도쿄에 갔을때, 문화재 환수운동의 협력관계에 있는 도쿄 고려박물관 이사 이소령 선생에게서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일제강점기 도굴왕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직접 유물의 출처를 기록한'오구라 컬렉션 목록'이란 책을 구했다고 했다. 이소령 선생이 보여준 책을 펴자 마자 나는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의 용봉문 투구에 대한 출처부터 확인해 보았다. 오구라는 이 투구가 '조선왕실 전래품'이라고 기재해 놓았다. 그때까지 막연한 추정만 있었던'제왕의 투구'가 문서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 기록은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 근거까지 제시해 주고 있었다. 조선왕실의 소유품이라면 개개인의 매매로 유통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1910년 국권을 빼앗긴 뒤에도 '궁내부장관'이란 부서가'조선 왕실의 유물과 재산을 관리했기에, 허가없이 왕실 물건이 민간이나 해외로 유출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하물며'임금 투구'와 같이 상징성 큰 물건이 매매돼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도굴 혹은 절도가 아니면 불가능한 행위였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조선 대원수 투구'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하고 이 투구의 특별열람과 공개를 신청해 왔다. 그리고 여기에 더 큰 명분을 갖기 위해 일본 시민단체들과 연대하는 한편 고종의 후손인 황사손 이원씨를 찾아가 함께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해 왔다.

 

지난 2월 중순 나는 일본 사람 8명과 동시에 도쿄 국립박물관에 열람신청서를 접수하고, 더 이상 공개를 거부한다면'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최후 통첩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도쿄 국립박물관으로부터 뜻밖의 낭보를 전달받았다. 지난 1일부터 12월 23일까지 한시적으로'조선 대원수 투구'를 공개하겠다는 통보였다. 드디어 조선 최고 군 통수권자인'대원수 투구'를 직접 보게 되겠구나! 나는 어린아이 처럼 몇 달간 마음이 설레어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리며 도쿄로 향했다.

 

■ '조선 대원수 투구' 귀환을 기다리며

 

대원수 투구를 본 뒤 일종의 놀라움과 분노는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가시지 않는다. 일본에 잡혀간 조선군 최고 통수권자의 투구를 어떻게 탈출시켜야 하는가! 끝도 없는 고민을 놓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다. 도쿄에서 조선 국왕을 만난 분노는 아무래도 가시지 않고, 무심히 방관하는 우리 정부에 대한 원망이 피어 오른다. 무턱대고 나는 도쿄 국립박물관에 아래와 같은 짧은 편지를 보냈다. 마음이 아프다. 이제 무엇을 해야할 것일까!

 

"일본 국민의 양심에 묻습니다. 나는 왜 일본에 있는 것입니까? 나는 한때나마 조선의 국왕이었습니다." - 조선 대원수 투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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