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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과 선현들의 어록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역사의 길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역사의 길은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수난의 길도 있고, 극복의 길도 있고, 희망의 길도 있다. 이 길 위에 수 놓았던 선현들의 영혼의 울림 같은 시대의 종소리를 되새겨 보는 것도 오늘날을 열어 가는데 귀중한 교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역사를 오래된 미래라고 하지 않는가.

 

옛 사람들이 남긴 맑은 영혼의 소리

 

원효의 아들 설총이 지은 화왕계(花王戒)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뒤 해이해져가는 왕실을 비롯한 사회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신문왕(신라 31代 재위 681~692)에게 지어 바친 유교의 교훈서다. 그 속에는 왕을 모란꽃에 비유해 장미꽃의 화려한 유혹에 현혹되는 임금에게 풍요로운 때일수록 띠풀도 아껴야 하고 지도자는 진실과 허구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할미꽃의 진언으로 신문왕을 각성케 했다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지배층의 부패가 극심해서 민생이 도탄에 빠져가는 고려 말에 가정 이곡(1238~1351)이 지은 차마설(借馬說)을 통해서는 시대를 바로잡기 위한 지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돈이 없어 말을 빌려탈 때 날쌘 말을 빌렸을 때는 낙상의 위험이 크고 야윈 말을 빌렸을 때는 넘어질까 조심해 냇물은 걸어서 건너고 비탈길도 조심해 오히려 낙상의 위험이 적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이야기다. 덧붙여 모든 것은 다 빌린 것으로 세상 떠날 때 가져갈 것이 없는데 제 것인양 착각하고 집착해 화를 자초한다는 뜻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문화의 토대를 이룬 세종대왕(조선왕조 4代, 재위기간 1418~1450)의 따뜻한 정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 중에 세종대왕이 즐겨 썼던 생생지락(生生之樂)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을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말과 함께 지도자가 성심으로 이끌면 백성들은 부지런히 근본에 힘써 종사해 그 생업을 즐거워한다는 이야기로 세종대왕의 나라사랑, 인간사랑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노비에게 부부합산 160일의 출산휴가를 주고, 글을 몰라 어두운 세상을 사는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해 광명을 찾아준 찬란한 업적을 이루기도 했다.

 

또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군주로 평가 받는 정조(조선왕조 22代, 재위기간 1776~1800)는 지식과 실천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신하의 질문에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알면 행하는 것인데 행하지 않는 이유는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기가 맛있는 줄 알면 먹지 않을 사람이 없고, 독초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 먹지 않을 것이라는 비유를 들어 명확한 지식이 바른 실천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됨을 주장했다.

 

물질만능 시대에 귀담아 들어야

 

실학의 대표적인 인물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의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재물을 가장 오래 간직하는 방법을 적어 놓았다. “아무리 귀하게 숨겨 놓아도 불이 나거나 도둑이 들면 허망하게 날아갈 것인데 가장 필요한 어려운 이웃에게 주면 그 고마운 마음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라”고 했다. 19세기 전반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시달리는 암울한 시대를 정화시키는 산소 같은 힘이었다.

 

20세기 들어 일제의 잔악한 침략 앞에서 도산 안창호(1878~1838)는 새로운 희망과 각오로 독립 정신을 고취시켰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나라사랑의 주인정신을 잃지 않고 희망을 열어가야 한다. 어린이는 방그레, 노인은 벙그레, 청년은 빙그레, 전국에 미소운동을 펼치자.”는 도산의 독립을 향한 열정적인 호소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횃불이 됐다.

 

현대의 물질만능의 시대, 경쟁의 시대, 분열과 대립의 시대에 우리 선현들이 남겨 놓은 맑은 영혼의 소리를 들으면서 새 생명이 싹트는 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희망의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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