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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찐 개찐

▲ 백봉기
KBS 2TV 개그콘서트에 ‘도찐개찐’이라는 코너가 있다. 앞가슴에 윷판을 그린 쫄쫄이 복장을 한 개그맨들이 도찐개찐 노래를 부르면서 정치인이나 사회상을 비판하는 풍자성 개그이다. 얼마 전에 방송한 것을 보면, 전봇대에 오줌 싸는 개처럼 옆 사람에게 다리를 올리자 ‘넌 뭔데 갑자기 다리를 올리냐?’고 묻자, ‘넌 왜 갑자기 세금을 올리냐?’고 맞대응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 밥에 그 나물, 그것이 그것이라는 의미로 사회현상을 빗대고 있다.

 

도찐개찐은 ‘별반 다르지 않다.’ 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윷놀이에서 도가 나오면 한 칸, 개가 나오면 두 칸을 가는데, 결국 하나나 둘이나 그게 그거란 것이다. 비슷한 말로 ‘오십보 백보’ ‘그 밥에 그 나물’ 또는 ‘청명에 죽나 한식에 죽나’ 라는 속담도 있다. 청명과 한식은 대개 하루 차이인데, 하루 더 살다 죽으나 하루 먼저 죽으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일이 허다하다. 특히 선거 때는 ‘저 사람만큼은 우리들의 심정을 이해할 거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사람이니까 어렵고 힘들게 사는 우리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잘해줄 거야!’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마저도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되면 금방 ‘도찐개찐’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일본 간 나오토(菅直人) 신임 총리는 다른 총리들과는 달랐다. 역대 총리들이 재계와 정계의 내로라하는 거물급 집안의 자손이었던 것과 달리 간 총리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민초 출신이었다. 처음 지지율도 60%대로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취임 1개월 만에 첫 성적표는 반토막이 난 지지율 30%였다. 소비세율 인상 때문이었다. 가난한 민초들을 대변할 줄 알았던 총리가 세금을 인상한다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판도 도찐개찐이라는 말이 나온다. 출범 당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65%가 넘었다. 그러나 요즘은 20%대까지 떨어졌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논쟁이 있지만 다른 정권 때나 지금이나 ‘도찐개찐’이라는 것이다.

 

정부만이 아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갑론을박하는 여당이나, ‘친노니 비노니’하며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야당의 모습도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둘 다 도찐개찐이다. 도찐개찐은 바람직한 말이 아니다. 실망하고 포기할 때 쓰는 부정적인 용어이다. 그 밥에 그 나물이 아닌 다른 사람과는 다른 ‘오십보 백보’는 없을까? 정말 다르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인물이나 정책은 없을까? 지난해 지방선거가 끝난 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슬로건을 바꿨다. 명품 도시, 살맛나는 도시, 품격 있는 도시, 시민이 행복한 도시, 꿈이 있는 도시 등 지역민에게 희망을 주는 표어들을 내걸었다. 그러나 1~2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역시 ‘도찐개찐 ‘ ’구관이나 신관이나 ‘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지.

 

△수필가 백봉기 씨는 지난 2008년 〈한국산문〉으로 등단해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를 발간하고, 한국미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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