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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筆寫)의 미덕

필사(筆寫)는 말 그대로 베껴 쓰는 행위다. 디지털시대, 종이와 펜이 사라지고 있는 이즈음 필사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아날로그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는 세대들에게는 필사가 주는 즐거움이 큰 모양이다. 필사를 권하는 책이 발간되고 나이에 관계없이 치열한 필사 작업을 즐기는 사람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상황이 흥미롭다. 필사의 미덕은 크다. 그중에서도 집중력과 기억력을 키워주는데는 필사만큼 좋은 방법이 별로 없다. 문학 지망생들이 필사를 통해 좋은 글쓰기를 단련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인이나 작가 중에서도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필사를 통해 글쓰기의 역량을 높이고 문학적 감성을 체득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은 대부분 필사 예찬론자다. 소설가 신경숙도 필사의 미덕을 온전히 체득한 작가다. 그는 강연 등의 공개적인 자리에서 젊은 시절 필사를 즐겼다고 소개해왔다. 대하소설 ‘토지’도 그의 필사 대상이었다.

 

소설이든 시든 그 전체나 일부를 필사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문장이 지닌 울림과 깊이를 공감하며 온전히 체득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실제로 좋은 문장을 눈으로만 읽는 것 보다 그것을 종이에 옮겨 적는 과정을 통해 체화되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아마도 그것이 필사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필사의 그런 미덕이 의심(?)받고 있다. 표절시비로 한국문단을 강타한 신경숙의 글쓰기 바탕에 필사가 온전히 놓여있다는 이유에서다. 신경숙은 표절의혹이 제기된 이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 의 문장과 <전설> 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 표절을 인정할 수 없지만 또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이 기이한 상황은 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정말 의도적으로 남의 문장을 베낀 것이 아니라면 젊은 시절 즐겼다는 ‘필사’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글과 자신의 글도 분간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냐고.

 

작가의 구차한 변명 때문에 ‘필사’의 미덕까지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필사는 글을 잘 쓰기 위한 좋은 방식이자 도구다. 필사를 통해 글의 바탕을 닦았지만 건강한 자기 문학으로 독자를 감동시키는 수많은 작가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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