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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층의 부패

감옥을 살더라도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비리를 저지를 수 있을까. 어른도 아닌 청소년들 사이에 ‘예스’라는 응답이 나와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다. 한국투명성기구가 몇해 전 전국 중·고생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반 부패인식조사’에서 청소년의 17.7%가 ‘감옥에서 10년을 살더라도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했다. 또 17.2%는 ‘내 가족이 부자가 될 수만 있다면 권력을 남용하거나 법을 위반하는 것’도 괜찮고, 20%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뇌물을 쓰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 ‘아무리 나를 더 잘 살게 해주어도 지도자들의 불법 행위는 절대 안된다’는 응답은 30.2%에 그쳤다.

 

‘나쁜 짓 하면 벌 받는다’ ‘남을 배려하면서 바르게 살아라’ ‘청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등등의 가르침을 받고 자라 온 세대들에겐 좀 어이 없는 결과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어른들의 거울 아닌가. 끊임 없이 터지는 공직자 부패, 공공기관의 모럴 해저드, 사회지도층의 비리, 돈이 전부인 세상.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병역비리, 논문표절, 뇌물수수, 위장전입, 전관예우, 성희롱·성폭력, 땅 투기 사례가 판도라 상자처럼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전직 총리와 국회의원 10여명이 지금 수사를 받고 있거나 재판 중이다. 어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수감되는 모습도 국민들에겐 좋지 않게 투영될 것이다.

 

그럼에도 비리가 터질 때마다 부패척결만 외칠뿐 그걸 엄격히 제도화하는 데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단죄하는 청렴 선진국들과는 대조적이다. 스웨덴의 부총리는 슈퍼마킷에서 공공카드로 생필품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고, 핀란드의 교육부장관은 골프장 개발과정에서 회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만으로도 사퇴했다. 싱가포르는 뇌물수수자는 형벌과 별도로 뇌물 전액을 반환하되 반환능력이 없으면 징역을 추가로 부과한다. 홍콩은 공직자가 재산형성 과정을 증명하지 못하면 뇌물로 간주해 몰수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관대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개혁과제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사회지도층의 비리 근절을 위한 고강도 처방의 제도적인 대책도 내놓길 바란다. 돈만 된다면 감옥도 가겠다는 비윤리성을 후세대에게 물려줘선 안된다. 그런 청소년들이 나라의 동량, 지도층이 되면 어찌 될지 끔찍하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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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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