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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참견을 하는 꼰대

▲ 이승미 남부시장 야시장 매니저

며칠 전 처음 가보는 동네에서 버스를 탔다. 요즘 백수의 특권인 ‘온종일 내 시간’을 가지고 발길 가는대로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전국투어를 하는데 그 날은 아기를 키우느라 핼쑥해진 친구 집을 가기 위해 빵집을 갔다. 빵을 사고 나오는데 친구 집에 일이 생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양손에 든 빵의 다른 목적지를 찾아야 했다. 오후 2시 버스 풍경을 상상하지 못한 채 한가로운 버스 여행을 기대하며 올랐다. 하지만 현실은 양손에 가득한 짐과 나를 둘러싼 초등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은 나만 빼고 다 아는 사이인 듯 했다. 괜찮았다. 일상의 활기로 느낄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 초등생과 감정싸움

 

그러나 차가 출발하면서 사람들이 같이 출렁였다. 가벼운 초등학생들은 더욱 그랬다. 내 뒤편, 여자아이가 살짝 미끄러지며 내 종아리를 발로 쓸어내렸다. 아이보리색 바지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버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두 어 정거장을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그 여자아이는 또 미끄러졌고 나는 또 밟혔다. 힐끔 보더니 이내 수다를 떨었다. 기분이 상했다. 오히려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내 눈치를 보시더니 짐을 들어주겠다고 하셨다. 몇 정거장만 더 가면 내릴터라 사양하고 서 있으면서 속은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지.’ 열은 받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교육의 사명감까지 뒤섞여 처음 본 그 아이가 번뇌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얘 버스에서 서로 부딪힐 수 있지? 그럴때는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거야.’ 아이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사과를 받는 공익광고의 한 장면을 연습했다. 그러나 이내 같은 상황이 또 벌어졌고 내 입은 “하아~”하며 깊은 짜증의 한숨을 뱉었다. 살짝 눈이 마주친 아이는 곧 고개를 돌렸다. 나는 초딩이랑 감정싸움하는 어른이 돼버렸다. 하지만 아이는 아랑곳 않고 내 앞이자 출입구 앞에 서더니 “끼였어. 끼였어.”를 외치며 버스의 리듬에 몸을 맡겼다. 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친구를 잡으려고 깔깔 거렸다. 나는 겨우 말을 했다. “얘, 손잡이.” 대꾸도 없던 그 아이는 나와 같은 정류장에 내렸고 갈 길을 갔다. 한참을 아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며 생각했다. ‘뭐야 이 찜찜함….’

 

평소 내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말 하는 게 쉽지는 않아도 못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주변 사람이 나서지 않아 일이 커지는 사건을 접하면 나라면 달랐을텐데 생각하고 산다. 하지만 그 버스에서 한 마디도 못했다. 어떤 감정이 내 입을 막았을까.

 

말을 했을 때 불특정 다수 사람들에게 받을 주목과 혹은 ‘꼰대’로 보이지 않을까를 경계, 그릇된 눈치보기가 있었나 싶었다. 흔히 “부모도 안 가르치는 걸 나섰다가 괜히 욕만 듣지.” 같은 말을 한다. 그렇다. 타인의 삶에 들어갈 틈이 없다. 세상이 흉흉함을 서글퍼한다. 만약 내가 그 버스에서 넉살좋게 허허거리며 “미안하지? 괜찮아. 안 넘어지게 꽉 잡고 가자.” 했다면 그 아이의 세계가 아주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숙한 방식으로 짜증의 눈빛을 보냈기에 그 아이 역시 어색한 눈치와 익숙한 모른 체로 대했다. 아쉬웠다. 물론 쉽지는 않다. 세상은 공익광고처럼 따뜻한 마음에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을 대할 때는 달랐어야 했는데 나도 참 여유가 없구나 싶었다.

 

아이들 대할 때 여유 가졌어야

 

지난 주말 열린 노동자 총궐기대회 소식을 들으며, 드라마 송곳을 보며,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상식 밖 일상을 대하며 분노보다 조롱이 익숙해짐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손 댈 수 없는 구조에 대해 허탈함보다 할 수 있는 따뜻함을 놓지 않고 사는 게 나를 위해서 이롭다 싶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압박이 되어오겠지만 백수의 여유가 주는 따뜻한 상념인가 싶기도 하다. 가을 끝, 진한 노랑색들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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