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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감수성과 우아한 주문

▲ 서경원 변호사

많은 변호사들이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하고 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명시된 근로조건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근로계약서가 있다 하더라도 추가 근무수당 없이 휴일에 출근하거나 야근하는 것쯤은 예삿일이다. 특히 갓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변호사의 경우, 변호사법에 의하여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6개월간 종사하거나 연수를 받아야 독립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그래서 근로기간을 위 법률사무종사기간인 6개월로 정하여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수습기간으로 보더라도 사용자는 최저임금의 100퍼센트 이상을 지급하여야 하나, 이것조차 지키지 않는 사업장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예외대상이 아닌데도 흔히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

 

얄팍한 기득권 챙기고 있는 이에게

 

아동청소년 인권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보니 나는 종종 청소년 아르바이트 관련 상담 의뢰를 받는다. 청소년 노동권 침해는 보통 두 가지 상황에서 발생한다. 하나는 관련법을 모르는 경우이다. 당시에는 권리 침해에 대한 인식 없이 사업주가 그렇다니 그런 줄 알고 있다가 지나고 보니 억울하여 상담하러 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권리 침해 사실을 분명히 알고서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경우다. 청소년의 노동이 그저 ‘어린 애들 용돈벌이’로 경시되는 상황에 청소년들이 얼마나 큰 무력감을 느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왜 주휴수당 등을 주지 않는지 묻는 청소년에게 “너 그 돈 어디에다 쓰려고!”라고 윽박지르는 사업주들. 그들에게 생계비를 버는 청소년의 생존권은, 상상 한참 밖의 것인가 보다.

 

나 또한 이런 압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부당해고나 임금 체불을 해결하기 위해 열성을 다해 일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는 변호사들이 법을 몰라서 이런 상황을 참아내고 있는 것일 리 없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이는 가장 먼저 약자들을 옭아맨다. 잘못된 방법으로 얄팍한 기득권을 챙기고 있는 사람들은 그 거대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그 부당함에 대해 발설하지 말라 주문한다. 때로는 그 방식이 우아하여, 우리가 그것에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이니, 좋은 교훈을 얻었다 생각하고 넘어가라.” 휴게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거나 소위 ‘알바 꺾기’를 당할 때에도, 사업장에서 모욕적인 대우를 당할 때에도, 심지어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부당하게 해고되었을 때에도 이런 주문은 계속된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해야

 

그러나 우리는 이를 단호히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이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이는 그 자체로 삶을 유지시키는 숭고한 행위이다. 나의 노동은 오롯이 나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그래, 인생의 쓴 경험 했다 쳐버리자’라는 포기의 외마디도 차라리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말이지, 제3자가 할 말은 아닌 것이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우아한 충고가 하고 싶어진다면 자신의 노동인권 감수성을 반드시 점검해야 하는 시점이니, 경계하자.

 

우리는 스스로가 행한 노동의 가치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 뒤에 타인의 존중이 따라온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부당한 것을 두고 부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로 이루어진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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