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국어사전에도 어린아이의 대소변을 받아 내기 위하여 다리 사이에 채우는 천이나 종이라고 했다. 필자도 지난 시절 1남2여를 키우며 수없는 기저귀를 사용했다. 그런데도 보면 볼수록 신비롭다.
어린이가 기저귀와 이별하려면 길게는 1년5개월 이상이 걸린다. 그렇다면 세 명의 아들과 딸을 길렀으니 줄잡아 50개월을 사용한 셈이다. 날짜로는 1,500일이 넘는다. 그리고 하루면 작게는 10번에서 크게는 15번도 넘게 갈아 줬으니 15,000번이 훨씬 넘는 숫자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거기다가 어린이가 설사나 질병이 있으면 더 갈아 줄 수도 있었으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내 아내의 고생이 참으로 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옛날 기저귀와는 달이 요즘은 1회용으로 이를 만드는 유명메이커들도 많아 질 좋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한번 쓰고 돌돌 말아 버리면 그만 이다. 하지만 옛날의 기저귀는 일일이 손으로 빨아서 양은 냄비에 삶고 또 빨아서 햇볕에 말려 사용하고 또 사용했다. 천이 망가질 때까지 사용했기 때문에 오래되어 구멍이 날수록 더 보들보들해서 사타구니에 더 좋았던 것 같았다.
요즘 기저귀는 한번 사용하면 곧장 쓰레기통 행이였지만 그때는 그런 제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작은 기저귀 통이 별도로 있어 보관하였다가 대개는 동생들에게까지 대물림을 할 수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냥 빨아서 사용해도 될 것을 아내는 꼭 삶아서 사용했으니 어머니의 그 정성을 우리 1남 2녀는 알고 있을까? 모를 것이다. 알았다하더라도 그 고마움은 지금쯤 잊었을 것이 분명하다. 벌써 큰딸과 아들은 40고개를 넘었고 작은 딸도 30대 후반인데 기저귀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여기까지 왔을까?
얼마 전 고향 후배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서울의 유명병원에 입원했다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6개월 만에 전주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왔다는 전화다. 그래서 요양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바로 그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형! 하고 불러 보래도 아는 체도 안한다. 기저귀 때문에 쑥스러워서일 거라고 생각도 해 봤다. 그 후배가 기저귀와의 싸움에서 지고 저 세상으로 갔다. 폰에서 전화번호를 지우기가 힘들어 다시 한번 걸어보고 지웠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아니라 기저귀를 차러 왔다가 기저귀를 차고 가는구나 싶어 서글퍼진다. 그 날 그 현장에서 본 귀저귀가 눈에 밟혀 영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요즘 슈퍼나 약국에 가서 기저귀가 눈에 들어오면 눈을 돌리고 만다. 그리고 어느새 하체로 눈과 손이 간다. 언제 또 내 주위 사람들 중에 저 구차한 것을 차고 있을 것이며 나 또한 그 신세가 된다면 어떻게 그 기저귀에서 벋어날 수 가있을까 라는 자문자답도 해 보지만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문명이 그만큼 발달해 기저귀를 번거롭게 빨고 삶아 쓰지 않은 천이나 종이 제품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간편하고 기뻐 할 일인가. 다만 욕심 같아서는 누구나 기저귀 신세를 지지 않고 웃으며 행복한 죽음을 맞으면 좋겠다나는 욕심은 노욕일까?
요즘 9988이란 용어가 유행이다. 분명히 그렇기 되기 위해서는 운동 열심히 하고 스트레스를 풀면서 열심히 건강을 지키려 노력하자.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스스로 지켜야 할 의무이자 책무라고 머리에 입력해놓고 살자.
△이태현씨는 〈문예사조〉를 통해 수필, 〈한국문학세상〉을 통해 시로 등단했다. 임실문인협회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 〈눈으로 부르는 노래〉와 수필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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