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온지 4개월이 지나고 있다. 평생의 거의 대부분을 인천에서 살았고 서울생활에 익숙한 내가 아무런 연고도, 왕래도 없던 전주에 혼자서 덜컥 내려온 것 치곤 그럭저럭…아니, 오히려 가끔 올라가는 서울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전국 돌며 내 속의 모든 것이 변화
작년 이맘때였다. 꿈을 위해 새로운 일에 도전한지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참아내기 힘든 상황들을 씹지 못하고 꾸역꾸역 삼키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결국 탈이 났다. 육체와 정신이 바스라 지던 날들이었건만 그 시간들에 애착이 가는 건 무엇 하나 제대로 마무리 지어보지 못한 내 과거에 대한 면죄부 같은 느낌이랄까. 켜켜이 쌓여 곰팡내 나던 과거의 자책들을 고작 2년의 시간으로 때우려는 심보가 영 열없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그로인해 난 웬만한 상황에서는 의연하게 대처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단단해졌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나의 행보는 좀 더 능동적이고 도전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당당하게 일을 그만두고 얼마 뒤 난 무전 전국일주를 계획하게 된다. 혼자 여행한번 제대로 가본 적 없던 내가 혼자 무전 전국일주라니. 이건 대한민국 경제성장보다도 더 급진적인 전개이지 않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서른한 살의 미혼여성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적어도 우리 부모님에게 난 번듯한 직장도, 결혼도 하지 않은 손톱 옆 튀어나온 살갗처럼 거슬리고 탐탁잖은 딸이었다. 더 이상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나를 스스로가 먼저 인정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나에게 당당해지려면 지금의 나론 부족했다. 나는 변할 필요가 있었다.
일을 그만둔 것도 나의 꿈에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한국화 퍼포먼스 아티스트. 쉽게 말하면 나는 한국화로 그림 공연을 한다. 더 많은 경험과 발전을 하고자 그림공연에 필요한 세트와 장비, 물품들을 모두 챙겨 여행길에 올랐다. 곧 겨울이었기에 배낭의 무게는 15킬로를 육박했고 거기다 공연짐이 15킬로였다. ‘이걸 들고 어떻게 다녀’, ‘여자 혼자 너무 위험한데’, ‘과연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기어들어 올 때면 생각을 차단했다. 최대한 안전에 대비하되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의지가 나약해질까봐 안 갈수 없도록 SNS에 나의 무전 전국일주 프로젝트에 대해 공표해버렸다. 낙천적이고 게으른 내가 이렇게 추진력 있게 일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나라도 한번 칼을 뽑으면 무생채 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남에게도, 나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나보다. 나는 오랜 시간 결핍되어 있었다.
그렇게 난 2015년 10월 20일, 예정대로 여행을 떠났고 그림을 그리며 전국 팔도를 돌아 같은 해 12월 26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두 달간 만난 사람들로 인해 나의 생각과 시야, 꿈, 삶, 내 속의 모든 것들이 변화로 꿈틀댔다. 내가 변하니 가족이 변하고 주변 사람들이 변했다.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부모님의 변화는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이제 전주에서 새로운 도전
나는 지금 전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여행의 부산물이다. 일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을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다. 나아진 것처럼 보였지만 내 단점은 여전히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한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해주니 더디지만 오늘도 한발 한발 내디뎌 본다.
△신은미 작가는 성신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했으며 전주 한옥마을에서 아트숍 새라바림 갤러리를 창업,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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