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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때'에 관하여

▲ 송봉금 모던판소리 대표

‘때’가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 보편적이고, 통상적이며, 평균적인 의미의 시간, 혹은 그럴 시기. 우리는 그것을 ‘때’라고 말한다. 스물하고 아홉 해의 청춘. 나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 비주류의 음악이 주류로 대접받는 국악의 고장 전주에서 판소리를 하는 이십대의 청춘이다. 그런 내가 요즘 가장 많은 조언이자 억압을 받는 말이 바로 ‘때’에 관한 것이다.

 

다른 이와 비교하면 불행해 보이는 삶

 

‘다~ 때가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할 시기적절함. ‘한참 이쁠때다’, ‘한참 좋을 때다’ 와 같은 말이 대부분 나에게 촉박함을 동반한 시간적 제약으로 와 닿는다. 마치 그것은 ‘너는 그 시간까지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돼 ‘ 와 같은 숙제처럼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시기에 관한 이야기에는 은연중 반감이 생긴다. 아마도 내가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처럼 꾸지람을 받거나, 혹은 여러 가지 ‘때’를 다르게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현듯 다른 이의 삶과 비교하자니 내 인생이 불행해지고 보잘 것 없어진 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할 쯤 대회에 나가 큰상을 받고 몇 해 뒤 발표회를 열고 관립단체에 취직을 하는 일련의 써클. 그것을 벗어나 관립단체의 취직은 물론이거니와 대회도 나가지 않았고, 틀에 박힌 발표회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 인생은 시기에 맞지도, 기준에 미치지도 못한 인생이 되어있었다. 나의 스승은 목 좋고, 체력 좋을 때 얌전히 공부를 안 하는 나를 마땅치 않게 여기며 노파심을 냈다.

 

그러나 나는 단 한시도 공부를 쉰 적이 없었고, 소위 말하는 헛짓을 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스승이 말씀하시는 얌전히 하는 공부에 대한 절절한 갈망을 느꼈으니 인생 공부는 심심치 않게 한 셈이지 않은가. 참 많은 것들을 체에 넣었고 그 중 잘하는 하나를 걸러내는 시간만으로도 촉박하고, 짧은 청춘의 한 때였다. 더욱 솔직히 말하자면 전통소리만으로는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은 설익은 젊은 소리꾼이 하는 발버둥과도 같았다.

 

나는 ‘옛 말에 그른 말 없다’ 혹은 ‘어른들 말씀에 틀린 것 없다’ 와 같은 경험적 토대의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험은 무섭게도 정확하고 선행한 이들은 이미 비싼 값을 톡톡히 치른 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른들이 말하는 ‘때’에 살고 있지 않다. 그것은 저마다의 인생 시계가 다르다는 것에 더욱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많은 환경이 달라졌고, 사람 생김새처럼 누구도 같은 인생을 살 수 없다. 남의 인생시계에 맞춰 초침을 돌리자면 가랑이는 찢어지고, 비교하는 삶은 불행을 동반한다.

 

판소리 단가 사철가를 보면 ‘녹음방초(綠陰芳草)’ 라는 가사가 나온다. 우거진 나무 그늘과 푸른 풀을 일컫는 말. 요즘 한참 흐르고 있는 계절, 여름을 뜻하는 말이다. 인생의 나이를 사철에 빗대는 사람들은 청춘의 시간을 여름에 비유한다. 나무도 한 뼘 키를 키우고, 가지를 내어 잎을 퍼트리듯, 한 단계 하늘을 향하는 계절.

 

남의 인생시계에 맞추면 더 불행해져

 

벚꽃은 봄에 유미하게 꽃을 맺어 여름에 잎을 틔우고, 단풍은 내내 푸르르다 가을이 오면 붉게 잎을 태운다. 사시사철 나무는 저마다의 계절에 가장 열렬하고, 또 가장 푸르르다. 청춘의 시간도 그렇다. 그것은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한계를 짓지 않고, 각자의 나무를 한 뼘 키우는 여름과도 같다. 저마다 향하는 하늘의 키가 다르고, 그들은 묵묵히 각자의 계절, 그 ‘때’를 기다린다.

 

△송봉금 대표는 전북대를 졸업했으며 제28회 전국국악경연에서 판소리 일반부 대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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