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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와 보습의 상생

▲ 양규태

사무실 앞에 서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따스한 사무실의 공기가 얼굴을 확 스친다. 그런데 문 앞의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할 사무실 살림꾼 여직원이 없다. ‘아직 안 왔나?’ 그러나 부지런한 그가 그럴 리가 없다. ‘어딜 갔나?’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안개 같은 건망증이 걷히며 생각이 났다.

 

“음, 그래 맞아. 어제 내가 전주 출장을 보냈었지”

 

요즘 부쩍 늘어가는 건망증이 미워진다. 너저분한 서류들이 널려있는 책상, 주인 없는 컴퓨터가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볼펜을 들고서 일을 시작할 요량으로 책상 앞에 앉는다. 집에서 출근할 때, ‘오늘은 이것과 저것을 매듭지어야지’하고 왔는데도 도통 생각이 깡통 속이다.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마음을 다잡고 생각했던 것들을 종이 위에 메모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일 할 마음은 어디론지 도망가고 창 너머 푸른 숲을 맹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사람들과 지내는 일이 ‘이런 이치도 있었구나’하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일이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어느 일이고 간에 양면이 마주서야 제대로 힘을 낼 수 있다는 것, 새삼 사무실 문전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여직원 자리의 무게를 크게 느낀다. 그러면서 전통적 농기구 쟁기와 보습을 떠올린다.

 

쟁기는 논 밭 갈이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농기구다. 소가 앞에서 쟁기를 끌고 가면 논밭의 흙이 뒤집어 진다. 그런데 쟁기질을 할 때 필수적으로 따라다녀 할 부속 연장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보습이라는 철제기구다. 쟁기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보습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언제나 땅을 뒤집는 땅 속에서만 일을 하는 부속기구이므로 땅위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힘든 땅을 뒤집는 공은 언제나 쟁기에게만 있고 보습은 그 공과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그러나 어쩌다가 보습이 깨지는 날에는 쟁기도 꼼짝없이 쉬어야 한다. 보습이 쉬는 날 쟁기의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쟁기뿐만이 아니라 이를 끌고 다녀야 하는 소도 별 볼일 없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자칫하면 농사일도 그르칠 수 있다. 보습은 그만치 하잘 것 없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연장이다. 반대로 쟁기가 쉬는 날에도 보습의 역할은 아무 것도 없다. 쟁기에서 분리되어 팽개쳐 놓기 마련인 보습은 뻘건 녹을 뒤집어쓰고서 쟁기가 일철을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쟁기와 보습은 이렇게 상호 보완적 역할을 수행해야 만 그 공과가 평가되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어느 한 쪽도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 일도 못한다는 숙명이 주어져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도 다를 바가 없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상대를 가소롭게 치부해버리거나 일방적인 소행엔 능률이 없을 뿐만 아니라 희망도 없다. 그런 곳에서 꽃이 피어나리라고는 기대할 수도 없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자기본위의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그래서 대부분 오직 자기만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성숙된 사람들은 정말 찾아보기가 힘들다. 제발 좀 성숙해지시길 바랍니다. 욕지거리나 해대고 남의 의견 깔아뭉개면 득되는 게 뭐가 있나? 다만 본능적인 쾌감은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늘 티격태격 싸움질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쟁기와 보습의 원리는 상생에 두고 있다. 입으로 하는 상생 말고 실천하는 쟁기와 보습처럼 상생 모습으로 살자.

 

△양규태씨는 〈문예사조〉로 등단했으며 부안읍장을 지냈다. 부안예총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변산 마실길 이사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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