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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지세

닭 만큼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한 동물도 없는 것 같다. 닭과 관련된 속담이나 비유가 유달리 많은 것도 닭이 그만큼 오랫동안 우리 삶 속에 깊숙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속담이나 비유는 대부분 하찮은 존재로 인식하거나 비하하는 게 대부분이다. ‘꿩 대신 닭’ ‘촌닭 관청에 간 것 같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 ‘닭 볏이 될 지언정 소꼬리는 되지마라’ ‘닭도 제 앞 모이 긁어 먹는다’ ‘닭의 새끼 봉 되랴’ ‘닭 길러 족제비 좋은 일 시킨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쓴다’`개 잡아먹다 동네 인심 잃고, 닭 잡아먹다 이웃 인심 잃는다’.

 

달걀과 관련된 속담은 깨지기 쉽거나 연약함을 빗대는 경우가 많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달걀에도 뼈가 있다’ ‘조막손이 달걀 도둑질하기다’ ‘계란을 삶는 데도 예절이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계란도 굴러가다 서는 모가 있다’.

 

사람들의 애용 식품이면서도 조롱을 받아온 닭과 계란이 요즘 귀한 존재로 떠올랐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국내 사육 닭의 15.1% 2400여만 마리가 살처분 됐다. 그 여파로 계란 값이 폭등하고, 제과업 등 관련 업종들이 줄줄이 타격을 받고 있다. 인수전염공통병으로 사람에게 전염될 것에 대한 우려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당장의 현안이 되고 있다. 닭 사육이 대규모화 된 이후 가장 흔한 식재료였던 계란이 이리 귀히 여겨지고 있는 때는 처음일 것 같다.

 

도내 최대 산란계 밀집지역인 김제 용지에서 AI가 발생했으나 발생 농가 주변의 일부 농가들이 닭 살처분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높은 계란 가격에 대한 기대 수익과 산란종계 살처분에 따른 입식의 어려움을 예상해서다. 애지중지 키운 산란계를 살처분하려는 농가의 심정을 이해할 법하다. 그러나 더 큰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가 이것뿐이라면 어쩌랴.

 

세상에 하찮은 존재란 없다. 그리 흔하게 여겼던 계란이 품귀현상을 빚어 항공 수입까지 이뤄져야 할 지경이다. 가히 누란지세다. 국정농단 등으로 국가적 위기상황에 닭 산업까지 위기다. 유신 독재시절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삶은 닭이 울까’ ‘산닭 길들이기는 사람마다 어렵다’ ‘알까기 전에 병아리 세지 마라’는 지혜가 담긴 속담도 있다. 누란지세를 극복하는 데 ‘콜럼버스 달걀’이 나오길 바란다. 닭이 수난을 받으며 닭띠 새해를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 김원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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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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