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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임실 오수초등학교가 오는 4월1일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100년 전 일제 치하에서 오수공립보통학교란 교명으로 문을 연 오수초교도 급박했던 근현대사 속에서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고, 지역사회를 견인하는 큰 힘이었다.

 

그 고난과 희열의 100년 역사에서 오수초교를 가장 자랑스럽게 비춰주는 사건이 하나 있다. 98년 전인 1919년 3월10일 이 학교 학생들이 오수 역전으로 몰려가 독립만세운동을 벌인 사건이다. 오수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은 이 학교에서 근무하던 이광수 선생의 은밀한 지도 아래 일사분란하게 이뤄졌고, 일본인 교장과 순사들을 놀라게 했다. 또 3월15일 오수면 지역 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전국 방방곡곡에서 펼쳐진 독립만세운동에 무슨 경중이 있겠는가. 그 중 임실의 독립만세운동이 주목되는 것은 오수보통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 그리고 독립선언문 민족대표 33인 중에 청웅면 출신의 박준승 선생이 참여했다는 사실 등 몇가지 특기할 사건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대표 33인 중 전북 출신은 임실의 박준승(천도교)과 장수의 백용성(불교) 2 명이다. 그런 연유로 국립호국원이 임실군 청웅면에 자리잡게 됐을 터이다.

 

임실은 호국보훈의 달인 3월과 6월이 되면 만세운동 재현, 학술대회 등을 통해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 싸운 선인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있다. 몇 년 전에는 한말 이석용 의병장을 기리는 학술대회를 열었고, 지난 15일에는 자암 박준승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독립선언서 민족대표 33인 중 최린, 정춘수, 박희도 등 친일파로 변절한 인물도 있었지만 박준승 선생을 비롯해 한용운, 이승훈 등 나머지 30명의 민족대표는 끝까지 종교활동 등을 통해 그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독립선언 낭독 후 일경에 체포된 박준승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확신하며 가혹한 취조에 굴하지 않았다. 결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고향 임실에서 천도교 활동에 전력했다. 갑오년에 동학농민전쟁에도 참여했던 박준승 선생은 1927년 사망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관심은 크게 부족하다. 지난 3월15일 임실 청웅에서 열린 3.1만세운동과 박준승 학술대회에 대한 군과 의회 등의 관심이 저조하자 ‘×새끼 축제에는 수백억을 쏟아부으면서 목숨바쳐 싸운 독립운동엔 …’이란 비난이 나왔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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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jhki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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