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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복원과 제철유적

역사는 기록으로 남는다.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정사가 되지 못한 채 묻히기 일쑤다. 신라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가야국의 역사가 그렇다. 가야는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 있던 작은 국가 혹은 그 국가들의 연합체를 이른다. 600년 역사를 구가했지만 가야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그늘에 가려 폄훼되거나 왜곡되어왔다. <삼국사기> 나 <일본서기> 에 단편적인 역사가 언급되고 있을 뿐 상세하게 기록된 문헌 자체가 없는 탓이다.

 

최근 가야사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가야사의 연구와 복원을 포함해 달라’고 주문하면서부터다. 사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가야사 복원 사업이 부상했었다. 그러나 당시 가야사 연구와 복원 사업은 고분군이 밀집되어 있는 영남권 위주로 진행됐다. 문헌 기록이 미미해 대가야국의 중심지인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해 김해의 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등 왕릉급 고분군들이 가야의 역사를 조명하는 기반이 되었던 이유다.

 

가야는 이들 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물들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철을 활용해 제작한 유물이 다량으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철 생산이 풍부했던 가야가 철을 기반으로 해운교역의 길을 열었고 경제적 문화적 풍요로움을 얻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가야는 철의 왕국으로 평가받게 됐다.

 

주목해야할 사실이 있다. 전북의 동부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가야유적의 실체다. 장수의 가야유적과 남원 운봉고원 등에 밀집되어 있는 가야시대 유적에서는 철을 생산하고 직접 제작까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유물 발굴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 동부지역 가야유적 발굴을 주도했던 군산대 곽장근교수는 ‘현재까지 확인된 제철 유적만 150여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대규모 철 생산지로서의 증거가 확인되면서 장수와 남원지역 가야유적 발굴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전북 동부지역 가야유적 복원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다.

 

그런데도 가야사 복원 연구 사업을 앞서 진행했던 김해 고령 함안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야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왔다. 전북도와 장수군도 장수가야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같은 시대 같은 권역 역사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따로 따로 추진하는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다. ‘영호남의 벽을 허무는 공동사업으로 가야사를 복원하자’는 문대통령의 바람과도 맞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세계문화유산 등재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 가야사를 온전히 복원해 제대로 인식시키는 일이다. 연구자들이 앞장서고 정부나 자치단체의 지원이 더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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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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