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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실학

 

실학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이다.

 

‘실학 ‘이란 용어는 17세기 이전부터 폭넓게 사용되어 왔지만 17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학문 영역으로 들어와 19세기 초반까지 본격적으로 연구되면서 새로운 학문으로 발전했다. 실학은 조선 후기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 개혁적이고 근대지향적인 사회사상이었다. 당시의 지배이념이었던 성리학의 경직성과 관념성을 비판하고 조선이 직면하고 있던 사회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던 실용학문. 그것은 곧 사회 개혁의 통로였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의 거장은 다산 정약용이다. 위대한 사상가이자 개혁가인 다산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해냈다. 그가 태어난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유적지에는 다산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0년에 건립한 다산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그 인근에 실학사상을 소개하고 연구하는 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실학 관련 박물관이다. 경기도는 실학이 태동하고 발전했던 곳일 뿐 아니라 실학 관련 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지역이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경기도 곳곳에 실학자들이 생활터전으로 삼고 학문을 연구했던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실학박물관이 다산선생의 생가 옆에 자리 잡은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 덕분이다.

 

사실 실학은 호남에서도 꽃을 피웠다. 실학의 비조인 반계 유형원은 부안에 낙향하여 말년을 보내며 학문 연구에 몰두했고, 이재 황윤석(고창), 존재 위백규(장흥), 여암 신경준(순창) 등 3대 천재 실학자라 불렸던 실학자들과 조선의 마지막 정통 유학자였던 간재 전우도 이곳에서 빛나는 학문적 성과를 축적해냈다. 유적이나 유산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호남의 실학자들은 오랫동안 서울과 경기지역 실학자들에 비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생가나 유적지는 관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기 일쑤였고, 반반한 기념관 하나도 갖지 못했다.

 

다행히 지난 2013년 호남실학원 건립 작업이 추진됐다. 반계 유형원 유적지가 있는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호남 실학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거점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국비와 도비가 확보되면서 호남실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조명될 수 있는 거점 마련이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호남실학원 건립은 무산되고 말았다. 부안군의회가 운영비 부담을 내세워 사업비 확보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여건이 조성되면 다시 추진한다’는 ‘무기한 연기’로 여지를 두었지만 이미 국비는 반환되었을 것이고 도비 또한 쓰임은 달라졌을 터다. 지금은 책임지는 주체도 없어 보인다. 안타깝고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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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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