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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완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벗어난 뒤로 책 읽기 더 즐거워져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매달 이렇게 책을 추천하려면 정말 많이 읽으실 것 같아요. 한 달에 몇 권정도 읽으세요?” 기대감으로 가득한 손님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혹여나 실망하지 않을까,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내적 갈등이 일어난다.

큐레이션 서점에서 테마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제안하는 북디렉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서점에 배치하는 책의 전부를 읽지는 못한다. 베스트셀러나 화제의 신간, 강연 저자의 책 외에는 출판사나 신문사의 서평을 보거나 책의 목차를 보고 핵심 부분만 찾아 골라 본다. 독서모임에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추천받기도 한다.

책을 고르고, 책을 사고, 책을 배치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독서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일까. ‘읽은 책=완독’이라는 암묵적인 규칙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찜찜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결국 나는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아요”라는 말과 함께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을 선택하곤 했다.

영화평론가이자 「이동진의 빨간책방」 팟캐스트 진행자 이동진은 그의 저서 <이동진 독서법> 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요. 미안해 할 것도 아니고 부끄러울 일도 아닙니다. 다 읽지 못한 책을 책장에 꽂아둔다고 큰일 나지도 않고요. 그저 안 읽힌다면, 흥미가 없다면 그 책을 포기하시면 됩니다. 굳이 완독하지 않아도 됩니다.”

완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참 듣고 싶은 말이었지만 아무도 해주지 않은 말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독서를 숙제로만 제시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을 시작으로, ‘중학생 필독 소설’, ‘서울대 권장도서 100’, ‘20대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까지 당위로 묶여진 부담스러운 리스트들만이 가득했다. ‘반드시’라는 부사에 숨겨진, 읽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숨겨진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독서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혹시 나와 같이 완독에 대해 압박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스스로 책을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이동진 작가, 그가 언제나 즐겁게 책을 향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른 게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99명이 권해도 한 명인 내가 거부할 수 있으며 중요한 건 내가 책에서 흥미를 느껴야 한다는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였다.

그가 내게 ‘괜찮다’고 말하자, 정말 괜찮아졌다.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벗어난 뒤에는 한층 책 읽기가 즐거워졌다. 이제는 한 권의 책에서 한 가지 질문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질문조차 하지 않는 사회에서 정해놓은 루트에서 조금 벗어난다는 것,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또 내가 궁금한 지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책임감은 버리고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즐겁게 책을 읽어보자. /노유리 북스포즈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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