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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남문농성장 철거하던 날] 기억과 약속을 가슴에 품고…

침몰 사고 4개월 뒤부터 시민 손으로 1199일 유지 / 냉소적 시선도 있었지만 1억1600만원 후원 모여

▲ 1199일간 풍남문 광장을 지켜온 세월호 남문농성장이 막을 내린 지난 2일 농성장 지킴이들이 걸개그림을 떼고 있다. 박형민 기자

전주에 마련된 ‘세월호남문농성장’이 막을 내렸다. 세월호가 가라앉은지 1327일, 전주에 천막을 세운 지 1199일 만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민들’로 구성된 농성장, 이곳에서 낮과 밤을 지킨 이들은 농성장의 마지막 순간을 ‘철거가 아닌, 기억과 약속을 가슴에 품는 날’로 정했다.

 

△ “슬프지만 웃어야죠”

 

“3년 전 세월호 천막을 설치하는 날 비가 많이 내렸어요. 하늘도 슬퍼서 눈물 흘리는구나 싶었죠. 그래서 오늘 날씨가 더 쌀쌀한 것 같네요.”

 

지난 2일 오전 9시 김환수 씨(57)가 전주 풍남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남문농성장’을 먼저 찾았다.

 

그는 3년전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다가 세월호 침몰을 봤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22일 세월호남문농성장을 직접 설치했다. 이날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던 그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세월호 침몰 사고 4개월 뒤부터 1199일간 풍남문광장을 지키던 ‘세월호남문농성장’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어서다.

 

노란색 조끼를 입은 채주병 씨 등 지킴이 10여 명도 일찍 나왔다. 이들은 빨간색 목장갑을 끼고 낡은 의자와 책상 등 무거운 물품부터 밖으로 옮겼다. 매주 지킴이들이 모여 세월호 추모곡을 합창할때 사용한 낡은 피아노도 보였다. 세월호의 넋을 기리는 그림과 사진, 편지는 ‘기억물품’이라고 적힌 종이상자에 담겼다. 모두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 기억저장소’로 향한다.

 

정리가 마무릴 될 무렵, 광장에 ‘세월호남문농성장 지킴이’ 50여 명이 모여 작은 행사를 열었다.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도, 교복을 입은 중학생도 “세월호를 잊지말자”며 손을 꼭 잡았다.

 

구이중학교 3학년 이찬영 군은 “지난해 박근혜 탄핵 사태를 맞아 광장에 나오면서 ‘세월호남문농성장’을 알게 됐다”며 “이웃들과 함께 농성장을 지킨 나날을 생각하면 슬프지만, 웃고 싶다”고 말했다.

 

황금희 지킴이의 편지에 다른 지킴이들은 고개를 떨궜다.

 

“오늘 세월호 농성장의 시민 농성을 마칩니다. 광장에서 울고 웃었던 3년여는 매일매일이 2014년 4월 16일이었습니다. 어둠에 갇힌 농성장 불빛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이곳에서는 처음 보는 이웃들이 함께 울었고, 촛불을 켰고, 노래를 불렀으며 수백만 개의 리본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천막 농성을 끝내고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섭니다. 세월호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때까지….”

 

세월호 희생자 문지성 양 아버지 문종택 씨는 “뜨거운 열기를 보여준 전주 시민에게 감사하다”고 답했다.

 

△ “언제든지 거리로 나설 것”

 

‘세월호남문농성장’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세월호를 보고 눈물을 쏟으며 설치한 농성장. 사람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이들을 기억하고 싶다’는 노력에 박수를 보냈지만, 아픔을 기억하는 방법이 다른 이들도 있었다.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은 좋지만, 매일 슬퍼할 수는 없다’는 현실론도 나왔다. 행사를 지켜보던 일부 시민들은 “광장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세월호 지킴이는 지난 3년간 전주 시내에 세월호 외침막 5000여 장을 내걸면서 생각이 다른 이들과 싸우기도 했다.

 

평화주민사랑방 문태성 대표는 “전주에 설치된 농성장을 향한 응원도 있었지만, 냉소적인 시각도 존재했다”며 “최근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고, 미수습자 가족도 더 이상 수색을 원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천막 농성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모든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매달 한 번씩 만날 것이며 우리 사회에 세월호 문제가 다시금 대두되면 언제든 천막을 칠 것”이라고 했다.

 

지킴이 강익현 씨는 “그동안 1억1600만 원이 넘는 후원이 있었다. 넓은 광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준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세월호 추모곡 ‘약속해’를 부른 지킴이들은 “철거가 아닌, 기억과 약속을 가슴에 품는 날”로 기억하자며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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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현 realit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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