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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가 될 것을 고백한다

성폭력 가해자는 물론 침묵 동조하던 이들에 더 전투적으로 싸울것

▲ 최진영 독립영화감독

곳곳이 난리다.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오래전부터 떠돌던 소문을 현실로 마주했다. 공동체를 지향한다며 촌으로 들어간 연극집단의 연출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자행했다. 극단의 대표는 여성임에도 같은 여성단원을 연출가의 황토방으로 밀어 넣었다. 공동체가 아니라 위계와 권력으로 개인의 육체와 정신을 말살하는 집단주의였다. 자고 일어나면 성폭력 가해자 리스트가 늘어나고 있다.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이름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우울증과 자괴감만 증폭된다. 무엇보다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건 피해자들의 이런 용기를 예언이랍시고 ‘음모론’으로 퉁치는 김어준의 말이다. 그는 미투운동이 한국에는 없었다는 말도 했었다. 이미 2016년부터 SNS를 중심으로 각종 문화계에서 ‘00계 성폭력 고발’이라는 해쉬 태그 운동이 돌고 있었다. 여자들은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데 지식인이라는 자가 ‘공작’ 운운하며 공중파에 나와 헛소리를 하고 있다. 현장에서 당한 피해자들의 참담함을 공감하기는커녕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독자들이 판단해주셨으면 한다. 기꺼이 용기를 낸 생존자들의 고백과 고발을 유행하는 구호쯤으로 여기는 자가 시사평론가라면 이 사회의 ‘시사’라는 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물어보고 싶다.

문화계 성폭력 가해자들이 더 악랄한 이유는 자신의 위계 권력을 이용하여 피해자들의 미래와 밥줄을 인질삼아 유린한 점이다. 청소년 시절, 남교사로부터 귀를 비롯한 신체터치와 속옷 검사를 이유로 여학생들의 척추를 이리저리 만졌던 불쾌한 기억들은 많은 여성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 불쾌한 경험을 저항 대신 침묵으로 치환했다. 왜냐면 그는 교사고 우리는 학생이었으니깐. 권력과 위계를 등에 업고 자행되던 숱한 폭력들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2차가해, 여성혐오, 성적대상화가 심해지고, 가해자의 시선으로 훑는 강간 묘사의 영화들은 많아지고 있다.

2월 초 서지현 검사의 행동에 용기를 받았다며 피해자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고백했다. 가해자는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을뿐 아니라 여성영화인상을 받았던 인물이다. 가해자는 은퇴를 선언했다. 사실 은퇴를 선언했다는 말도 수긍하기 어렵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뉘앙스다. 사실상 ‘파문’ ‘퇴출’이라는 단어가 맞다. 그러니깐 현재 거론되는 성폭행, 성추행 가해자들은 ‘자숙’ ‘죄인의 심정’이라는 말로 물타기 하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들은 범죄자니깐 법의 심판을 조용히 기다리면 되는 거다.

올림픽 최초로 설립된 성폭력 상담센터의 총괄 책임을 맡은 김성숙 수녀는 “성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임에도 그동안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2차가해의 피해까지 입어왔다. 그러고 보면 성폭행의 위기에서 가해자의 혀를 잘라 재판을 받았던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원작자가 이윤택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숱하게 말을 했지만 되돌아오는 건 메아리뿐이었던 사회. 가해자뿐 아니라 침묵과 조롱으로 동조한 그치들 덕분에 우리는 더 전투적으로 싸울 것이다. 몇 천년동안 전사로 위치 선점했던 당신들은 그만 투정하라. 당장 젠더의 위계 폭력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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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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