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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눈물 눞옾곡롬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폭풍눈물 눞옾곡롬’ 이 단어의 뜻은 무엇일까요?

언뜻 보기에 창의력 문제나 난센스 문제일 것 같은 저 질문의 답은 ‘같은 말이다’ 이다. 눞옾곡롬이라는 단어를 거울에 비추듯이 돌려보면 폭풍눈물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폭풍눈물과 같은 의미로 눞옾곡롬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기발한 상상력의 언어를 모두가 신기하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한글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인터넷 용어와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신조어에 대한 지적은 한글날이면 매번 되풀이되는 이야기다.

외계어와 같은 한글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펼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미 한글은 창조와 동시에 전통을 깨부순 언어다. 국가에서 반포했으나, 널리 통용되기까지 국내외로 많은 반발을 얻었다. 조선사회가 완전히 붕괴하고 나서까지도 대부분 인쇄된 문서에서 국한문 혼용은 통상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통의 한글 사용법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면 한자도 외국어 아닌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서도 한자어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글의 창제 자체가 신종 국어 표기법이 아니었나 하는 주장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한복판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한글 반포 직후의 어느 사대부이거나, 아니라면 아예 한자를 모르던 사람이다. 난데없이 나타난 직선과 곡선이 뒤엉킨 이 모양이 문자라고 한다. 익히기 쉽고, 들리는 대로 쓸 수 있다. 첫째로 사용하기 아주 편리했으며, 둘째로 배우기도 쉽다. 셋째로 새로 창조된 것이다. 한글 반포 당시해 마주하며 느꼈을 이 세 가지의 감상이 인터넷 용어를 마주하는 기성세대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낯설고 외계어 같으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쉽고 빠르게 배우며 간편하다. 무엇보다 그 세대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언어다. 어쩌면 신조어를 매 순간 만들고 있는 세대들이 한글의 전통적 가치를 되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글은 배우고 사용하기에 쉽다는 장점 이면에 몇 가지 난해함을 가지고 있다. 불규칙 변형이 많고, 구어의 대부분이 표기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교육의 빈도와 강도를 떠나 국민 대부분이 사용하는 말씨가 조금씩 다르다. 세대가 변할 때마다 조금씩 억양과 언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주 사용하게 되는 단어는 살아남고 사용되지 못한 단어는 조금씩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언어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것은 애석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세대 간에 자란 환경이 변하는 것조차 막을 수는 없다. 구어와 표기법의 틈이 마냥 벌어지도록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이유로 국립국어원에서는 끊임없이 맞춤법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일 테다.

사실 줄임말과 신조어는 예전에도 있었다. 다만 그 언어에 대한 표현과 배경지식이 변화하는 것뿐이다.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와 같은 단어도 줄임말이 아닌가. 시대와 세대를 대변하는 것 중의 하나는 언어다. 당장 언어의 파괴를 걱정하기보다 통용되고 있는 언어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더 먼저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고 창조해내는 단어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옛것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며 다그치는 것만큼 답답한 일이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눞옾곡롬 흘릴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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