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 일주일을 쉴 틈 없이 보냈다. 일도, 공부도, 놀기도 욕심이 많아 잠도 줄여가며 열심히 달렸다. 뿌듯한 일주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 주의 마지막 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온몸이 아프고 열이 났다. 병원을 다녀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학교를 갔다가 참지 못하고 다시 병원을 갔다. 독감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입원을 권했지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채로 병원에 누워만 있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었다. 버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일을 했다. 그리고 겨우 잠에 들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었다. 증상이 악화되어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시 응급실 신세가 되었다.
눈물이 났다. 아픔의 눈물이었는지, 안도의 눈물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눈물엔 걱정과 연민이 있었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는 걱정, 그리고 이렇게 아픈데 그런 걱정을 해야 하는 나에 대한 연민. 분명 아픔보다 더 컸다.
처음 내가 입원을 거절했을 때 엄마가 그러셨다.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고. 다 끝내지 못한 일들보다 내 몸을 우선으로 여길 방법이 있을 거라고.
그래서 입원을 했다. 그리고 그 일들을 더 이상 어떻게든 끝내려 하지 않았다. 이상한 책임감을 버렸다. 아파서 못했다고, 그저 사실대로 말했다. 감사하게도 질타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제 한결 마음이 편해지나 싶었다.
격리병실을 사용했기 때문에 항상 혼자였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모든 것을 혼자 했다. 부모님도 오래 계시지 못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있어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무서웠던 밤도 잠시, 혼자라는 생각이 점점 행복했다. 영화도 보고, 낮잠도 잤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건 자유도, 해방감도 아닌 미처 끝내지 못하고 미뤄버린 일들과 지금부터 해야 할 일들이었다.
독감은 기본적으로 5일 입원을 권장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입원 4일차인 금요일엔 면접이 있었고 주말까지 쌓인 일들이 나를 옥죄었다. 결국 노트북을 가져와 병원에서 면접 준비를 했다. ‘3일차에 퇴원하기’라는 목표가 생겼다.
드디어 3일차가 되었고 퇴원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끈질기게 설명한 후에야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마스크 절대 착용과 뜨거운 물 자주 마시기, 약 꼭 챙겨먹기 등 수많은 조건하에 퇴원을 했다.
무려 독감에 걸렸는데, 책임감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물론 영화를 보거나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진정한 휴식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 ‘퇴원하고 해야 할 일들’생각으로 가득했고, 심지어 면접을 위해 일찍 퇴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요가 자세 중에는 ‘완전 휴식 자세’라는 것이 있다. 일명 ‘송장 자세’라고도 불리며 요가의 마무리 자세로 주로 이용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팔은 편하게 바닥에 내려두며 손바닥은 하늘을 향하게 한다.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온 몸의 힘을 빼고 편하게 호흡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잠이 오지만 피로를 풀어주고 마음에 휴식을 준다. 이렇게 간단한 ‘완전 휴식 자세’는 쉬워 보이면서도 체득하기 가장 어려운 자세라고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 ‘완전 휴식’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 휴식’,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상상해보면 그렇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여유로운 아침을 먹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길을 걷는 것.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가고, 저녁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하루를 마무리 짓는 것.
물론 거기엔 반드시 있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해야 할 일’과 ‘미뤄둔 일’, ‘끝내지 못한 일’등의 것들을 잠시 잊는 것이다. 가능한 일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하루쯤은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런 어느 완벽한 휴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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