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2-10-03 07:39 (Mon)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청춘예찬
외부기고

예술 훔쳐보기

image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주임

2003년도 영화 실미도를 시작으로 시작된 대한민국 영화계 ‘천만 관객’ 시대. 친구들의 SNS에는 주말에 다녀온 전시회 인증샷이 쏟아진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문화예술 관람률은 코로나 충격 이전까지 2004년부터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왜 예술을 사랑할까? 감히 추측해보자면, 그 이유는 훔쳐보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100분 내외의 러닝타임 동안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영화, 캔버스 속에 숨어있는 시대와 작가의 생애를 훔쳐보는 미술. 예술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를 몰래 보여준다.

 

파리를 훔쳐본 화가, <에드가 드가>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의 마지막 보석으로 불리는 에드가 드가는 당대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프랑스와 인체의 현실적인 움직임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중에서도 1,500여 점을 차지하는 소재가 바로 ‘발레’이다. 드가의 그림 속 발레리나는 아름다운 선을 뽐내면서도 묘하게 사실적인 피곤함이 느껴지고, 그 피곤함 끝엔 무대장치에 교묘히 가려져 발레리나를 감상하는 검은 실루엣의 남성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서 있다. 

 

당시 파리의 발레단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신분 상승을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소녀들과 이들을 감상 거리로 취급하고 간택하기 위한 부르주아 남성 후원자들이 가득했던 어두운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드가는 <무대 위의 무용수>, <분홍과 초록 튀튀를 입은 무희들>과 같은 대표작에서 어김없이 뭉개진 실루엣의 남성을 등장시키며 파리와 예술의 뒷면을 가감 없이 훔쳐본 화가였다.

 

훔쳐보면 안 되는 숭고함, <고다이바 부인> 

벌거벗은 여인이 말을 타고 도시의 빈 거리를 돌아다니는 그림을 교과서나 뉴스 속에서 한 번쯤 만나본 적 있을 것이다. 존 콜리어의 <레이디 고다이바(Godiva)> 속에는 훔쳐보면 안 되는 숭고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11세기 중세 영국 코번트리에는 탐관오리인 영주가 농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며 고혈을 짜내고 있었고, 농민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영주의 부인 ‘레이디 고다이바’의 간곡한 청에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를 지나가면 이를 들어주겠다는 허무맹랑한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부인은 알몸으로 거리에 나섰고, 마을 사람들 역시 이 마음에 회답하기 위해 절대 부인을 내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녹아있는 <레이디 고다이바> 그림 속 텅 빈 거리가 만들어졌다. 

 

여담으로, 부인의 이타심과 관용의 정신으로부터 벨기에의 품격있는 초콜렛 고디바의 브랜드명이 탄생하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유일하게 약속을 깨뜨리고 이를 훔쳐본 마을의 재단사 톰은 결국 눈이 멀었을 뿐만 아니라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Peeping Tom’이라는 수치스러운 단어의 유래가 됐다고 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활동,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는 예술. 다가오는 10월부터 진행 예정인 팔복예술대학에서도 <예술의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무겁고 엄숙하게만 느껴졌던 예술을 좀 더 쉽게 탐닉하는 시간을 갖고자 준비하고 있다. 나의 하루가 어쩐지 단조롭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면, 오늘은 음악, 미술, 영화 등 수많은 예술 속에서 작가가 숨겨놓은 세계를 몰래 훔쳐보고 풍성한 삶을 완성해보자.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image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주임

2003년도 영화 실미도를 시작으로 시작된 대한민국 영화계 ‘천만 관객’ 시대. 친구들의 SNS에는 주말에 다녀온 전시회 인증샷이 쏟아진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문화예술 관람률은 코로나 충격 이전까지 2004년부터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왜 예술을 사랑할까? 감히 추측해보자면, 그 이유는 훔쳐보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100분 내외의 러닝타임 동안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영화, 캔버스 속에 숨어있는 시대와 작가의 생애를 훔쳐보는 미술. 예술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를 몰래 보여준다.

 

파리를 훔쳐본 화가, <에드가 드가>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의 마지막 보석으로 불리는 에드가 드가는 당대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프랑스와 인체의 현실적인 움직임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중에서도 1,500여 점을 차지하는 소재가 바로 ‘발레’이다. 드가의 그림 속 발레리나는 아름다운 선을 뽐내면서도 묘하게 사실적인 피곤함이 느껴지고, 그 피곤함 끝엔 무대장치에 교묘히 가려져 발레리나를 감상하는 검은 실루엣의 남성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서 있다. 

 

당시 파리의 발레단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신분 상승을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소녀들과 이들을 감상 거리로 취급하고 간택하기 위한 부르주아 남성 후원자들이 가득했던 어두운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드가는 <무대 위의 무용수>, <분홍과 초록 튀튀를 입은 무희들>과 같은 대표작에서 어김없이 뭉개진 실루엣의 남성을 등장시키며 파리와 예술의 뒷면을 가감 없이 훔쳐본 화가였다.

 

훔쳐보면 안 되는 숭고함, <고다이바 부인> 

벌거벗은 여인이 말을 타고 도시의 빈 거리를 돌아다니는 그림을 교과서나 뉴스 속에서 한 번쯤 만나본 적 있을 것이다. 존 콜리어의 <레이디 고다이바(Godiva)> 속에는 훔쳐보면 안 되는 숭고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11세기 중세 영국 코번트리에는 탐관오리인 영주가 농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며 고혈을 짜내고 있었고, 농민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영주의 부인 ‘레이디 고다이바’의 간곡한 청에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를 지나가면 이를 들어주겠다는 허무맹랑한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부인은 알몸으로 거리에 나섰고, 마을 사람들 역시 이 마음에 회답하기 위해 절대 부인을 내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녹아있는 <레이디 고다이바> 그림 속 텅 빈 거리가 만들어졌다. 

 

여담으로, 부인의 이타심과 관용의 정신으로부터 벨기에의 품격있는 초콜렛 고디바의 브랜드명이 탄생하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유일하게 약속을 깨뜨리고 이를 훔쳐본 마을의 재단사 톰은 결국 눈이 멀었을 뿐만 아니라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Peeping Tom’이라는 수치스러운 단어의 유래가 됐다고 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활동,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는 예술. 다가오는 10월부터 진행 예정인 팔복예술대학에서도 <예술의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무겁고 엄숙하게만 느껴졌던 예술을 좀 더 쉽게 탐닉하는 시간을 갖고자 준비하고 있다. 나의 하루가 어쩐지 단조롭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면, 오늘은 음악, 미술, 영화 등 수많은 예술 속에서 작가가 숨겨놓은 세계를 몰래 훔쳐보고 풍성한 삶을 완성해보자.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