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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 흥행으로 웅치전투 재조명

영화 속 한산대첩과 함께 전라도 수호의 주요 전투
이치 전투도 관심도 높아져⋯국가사적지 지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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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전라도를 지켜내기 위한 중요 전투로 웅치전투가 나오면서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사진은 웅치전적지. 오세림 기자

“여기서 물러서면 전주성과 전라좌수영 아니 전라도는 끝이여.”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의병장 황박 역(役)의 대사 중 하나다. 한산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그렸지만 영화 속 전라도를 지켜내기 위한 또 다른 중요 전투로 ‘웅치’전투를 내세웠다.

영화 한산이 누적관객수 415만 명,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면서 흥행하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웅치전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또 이와 함께 거론되는 이치 전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어 웅치‧이치 전적지에 대한 국가사적 지정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웅치전투는 1592년 음력 7월 8일 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현 ‘곰티제’라 불리는 웅치에서 벌어진 전투다. 웅치는 산세가 높고 험했다. 한양을 점령한 후 전라도 점령을 위해 전주성 공략을 하던 고바야카와 다케카게(소조천륭경)의 제6번대와 조선의 관군과 의병이 웅치에서 격돌한다. 

조선군은 곰티재의 지형을 이용해 곳곳에 목책을 세워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조선군은 웅치에서 3겹의 방어선을 치고 결사항전했다. 왜군 선봉대는 조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진격해 왔다. 1군과 2군이 결사적으로 그들을 막아 물리쳤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총격을 감행한 일본군은 결사항전했지만 장수 4명과 조선군 2000명이 전사하는 등 끝내 패배했다.

패배한 전투였지만 웅치 전투로 타격이 컸던 일본군은 그 기세가 꺾여 결국 전주성을 포기하고 후퇴한다. 이와 비슷한 시기 벌어진 이치 전투에서는 승리를 했다. 완주 배티재에서 벌어진 이치 전투는 동복현감 황진이 이끄는 조선군이 치열한 전투 끝에 일본군을 패퇴시켜 전라도 방어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도 전라도 수호의 중요한 전투 중 하나지만, 당시 일본군의 주력병력이 ‘육군’ 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웅치‧이치 전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임진왜란 당시 육상에서 최초로 승리한 전투인 것. 국가사적지 지정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전북도는 지난달 문화재청에 웅치전적지의 국가사적 지정을 시도했지만 최종 보류 결정을 받았다.

하태규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임진왜란 초기 5년의 전투의 향방은 전라도 수호에 있다”면서 “웅치‧이치 전투는 당시 일본군이 육군이 주력병력이었고, 한양을 점령한 뒤 내려온 기세 높은 일본군을 격퇴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웅치이치 전투는 다른 임진왜란 전투에 비해 소극적으로 평가가 되고 있다”면서 “국가사적지로 인정해 그 위상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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