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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을 깨부수는 예술가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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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리 미술평론가

타들어 가는 55℃ 고온에서 살았다. 움직일 수 없는 살인적 더위 속에서 죽는 줄 알았다. 수백만 마리 파리가 온몸을 뒤덮는데 그것을 떼어낼 재간이 없었다. 3개월이 지난 후에, 기적처럼 파리가 사라졌다. 알고 보니 그녀가 자연과 하나 된 순간을 맞은 것. 파리에게 더는 외부적 물건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vramovic, 1946~)가 1980년에 1년 동안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애버리지니(Aborigine)와 사막에서 살면서 몸으로 체득한 일화이다. 그녀는 분명 현존하는 세계 최고 행위예술가이다. 필자는 예술가를 논할 때, 최초나 최고라는 수식어를 삼간다. 예술은 기록 경기가 아니고 창작해야만 사는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들을 예술가로 인정하기에. 하지만, 마리나는 최고이다. 최소한 미술학도에게 그녀는 피카소나 뒤샹만큼 유명하고, 명확한 개념과 실천을 통해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미술가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극단적 고통의 감각을 통해 신체적 한계를 넘는 급진적 퍼포먼스를 펼치던 마리나는 1976년에 유명한 행위예술가 울라이(Ulay, 1946~2020)를 운명처럼 만났다. 생일도 같았다. 울라이는 그녀가 퍼포먼스를 하면서 생긴 상처를 치료해 주고, 강한 끌림으로 동고동락하면서 12년간 공동작업을 했다. 이들은 물리적 억압과 폭력적 행위로 신체적 한계 탐구를 1988년까지 계속했다. 

대표작품은 이탈리아 볼로냐 현대미술관 개막 전시에서 펼친 <측정할 수 없는, Imponderabilia, 1977>이다. 둘이 나체로 전시장 입구에 선 채 서로 마주 보며 좁은 통로를 만든 것. 관객이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벌거벗은 사람 앞을 지나면서 지극히 불편한 상태를 겪어야만 했다. 3시간으로 계획한 이 퍼포먼스는 90분 만에 관객의 신고로 경찰에게 저지당했다.

<연인들, The Lovers, 1988>은 이별을 기념해서 약 3개월 동안 만리장성을 걷는 퍼포먼스이다. 붉은 외투를 입은 마리나는 서해에서, 푸른 외투를 입은 울라이는 고비사막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서로를 향해 2,500km를 걸어온 두 사람은 중간 지점 산길에서 만나 악수와 포옹을 하고 영영 헤어졌다.

그렇게 헤어진 후, 22년 만에 잠시 재회한다. 2010년, MoMA에서 마리나의 회고전 <예술가가 여기 있다, The Artist Is Present>에서. 총 736시간 30분 동안, 미술관 문을 여는 시간부터 닫을 때까지 그녀는 의자에 앉아 단 1분도 움직이지 않고 관객 중 한 명과 눈을 마주했다. 퍼포먼스 중에 가장 극적인 장면은 옛 연인을 예기치 않게 만난 것. 자신 앞에 앉은 사람이 울라이라는 걸 알아차리자 마리나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녀는 오직 관객 눈만 응시한다는 자신의 규칙을 깨고 탁자 위로 손을 건넸다. 내민 손을 울라이가 맞잡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손뼉을 쳤다.

마리나는 예술가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라고 말한다. 책임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세상 프레임을 깨부수는 예술가임에도. 이태원에서 생때같은 청춘들이 주검으로 돌아왔는데 가만히 있으라 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정말 어처구니없다. 이 비통함과 분노를 어찌 감당하려고. 

/문리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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