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만 해도 전북지역과 IT(정보기술)라는 용어와는 썩 어울리는 관계가 아닌 것 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전북지역에서도 ‘정보영상 도시, 전주’라는 선언이 나오고, 2000년부터는 국제컴퓨터게임대회가 열리고, 게임 애니메이션 등 IT 관련 벤처기업이 속속 등장해서 현재 83개에 이르는 등 이제는 IT산업이 전북경제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됐다.
여기에는 지난 98년 11월27일 설립된 전주소프트웨어지원센터와 지난해 출범한 전주정보영상진흥원 그리고 멀티미디어기술지원센터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정부와 자치단체들이 인큐베이터에서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었던 3년여의 세월이 지난 지금, 도내 IT 벤처기업 가운데 매출을 내는 곳은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경쟁력이 아직도 미미하다. 그나마 운영 수지를 맞추는 기업 중에도 관공서에서 수주하는 홈페이지 등 IT 관련 물량을 따내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따라서 이제 IT 벤처기업들이 과연 기술력과 수익모델 면에서 자생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냉철한 검토를 거쳐 옥석을 가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벤처기업들은 아이템을 선정하고 창업을 시작할 때 고객과 시장중심적 사고보다는 기술을 과신한 마케팅 전략의 부재로 성공률 5% 이하라는 우울한 예측을 낳게 하고 있다. 제품의 진부화 및 대체재의 출현, 소비자의 변동, 자금상의 문제, 마케팅 부족 등이 총체적인 문제로 꼽힌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는 정책 방향 전환과 경영인의 자세 그리고 도민들의 인식이다.
물론 벤처기업은 기존 기업들의 성장이 정체되거나 관료화·진부화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인 혁신과 성장의 프론티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가는 과정에서 경제 활력을 유지하고 새로운 변화와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
오늘날 미국경제의 발전을 이끌어 가는 주요기업들이 벤처에서 출발을 했으며, 그 출발은 어디까지나 개인들의 과감한 모험정신, 기존의 관료적인 조직과 제도로부터의 일탈과 독립의지, 희생적 연구개발 노력 등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의 직접적인 보호와 지원이 아니라 그러한 개인을 모험적으로 도와준 엔젤 투자자와 자생적 벤처캐피탈, 대학과 연구기관, 연금기금과 금융기관 등 기관투자가들, 창업후의 도약과 안정적 성장을 가능케 해주는 자본시장의 혁신과 발전이었다.
무엇보다도 성공한 기업가와 그의 ‘부’를 존중하고 이들을 영웅이나 모델로 인정해 주는 사회적 환경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벤처기업 성공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없이 과거 정부 주도의 경제적 근대화를 추구하던 시기의 압축성장적 발상으로 벤처기업을 육성하고 단기적, 가시적, 수적 성과에만 집착함으로써 벤처산업 정책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이제부터라도 벤처가 자라고 커나갈 수 있도록 경제 사회적 환경을 변화시키고 정책 변화, 발상 전환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벤처기업에 대한 자치단체의 직접 지원이나 간여를 최소화하고 간접 지원과 벤처기업 환경정비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투자자와 경영진이 져야 할 위험부담을 대신하고 퇴출돼야 할 기업들을 단지 벤처라는 이유로 시장에 존치시키는 것은 기업수명을 일시적으로 연장할 뿐 정상적인 벤처분야의 기능과 역할은 정착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기업가 정신과 연구, 개발 노력과 희생적 자세를 갖춘 벤처기업들과 기업예비군들이 다시 한번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대장정에 나설 때다.
/ 허명숙 (본보 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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