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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대들어서 죄송해요 - 이상우

 

내일이 동지라서 깜깜한 새벽인데 여학생 두 명이 후문에서 현관 쪽으로 걸어온다.

 

"너희들 길도 안 보이는 새벽 일찍 학교에 오는구나?"

 

아이들은 웃으면서 "파티 준비해야 돼요."

 

"그래! 종강파티하려고?"

 

"그렇게 되는가요?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준비를 끝마쳐야 하거든요."

 

"너희들 대단하다.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파티준비를 마치려고 이렇게 이른 시간에 등교를 하다니~"

 

아이들은 빙그레 웃으며 4층 6학년 교실로 올라간다.

 

아이들 뒤를 따라 4층에 오르니 복도에 커다란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다. 종이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갔더니, 교실 문을 열고 남녀 아이들 3 ~ 4명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선생님 그거 떼면 안돼요?"

 

그 종이에는 '이OO 선생님을 위한 길, 밟으면 큰일 나요'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종이 좌우에는 빨강 테이프를 저희 교실까지 길게 붙여 놓았다. 빨강 카펫 길은 아니라도 그 정성은 카펫보다 더 귀중한 길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계단 입구에서 저희들 6학년O반까지의 복도 벽에는 색종이로 모양을 만들어 붙여 놓았다.

 

"지킴이선생님 저희가 만들었어요. 잘 만들었죠?"

 

"그럼 너희들 대단하다. 얼마나 일찍 나온 거니?"

 

"어제 늦게까지 했어요. 그러다가 경비 아저씨에게 혼났어요. 미워요."

 

"그랬겠지.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으면 부모님도 걱정하지 않겠니? 그래서 그랬을 거야! 어쨌든 너희들,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대단하다."

 

"대단하죠?"

 

"그럼!"

 

"거봐라! 우리가 잘했지." 저희들끼리 소근 대며 교실로 들어간다. 열려있는 문틈으로 교실을 들여다보니, 대낮처럼 환하다. 천장에는 풍선을 매달았고 오색 테이프는 머리가 닿을 정도까지 내려져 있다. 좌우창가에는 색종이를 접고 오려서 아름답게 꾸몄다. 뒤 벽에는 선생님께 드리는 감사의 글을 여러 모양으로 써서 붙였다. 교실중앙 책상에는 커다란 케이크위에 촛대가 대나무처럼 서있다. 그 옆으로 과자와 과일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케이크 주변에 10여명의 아이들이 서서 나를 보더니, 그중 여학생 두 명이 웃으며 나온다.

 

"너희들 몇 시에 나왔니?"

 

"우리요? 6시 반에 나왔어요."

 

"오늘 파티에 형철(가명)이도 참석하겠지?"

 

"형철이 안돼요. 어제 선생님에게 대들었어요."

 

"그래도 오늘 같은 날 참석시켜서 마음을 풀어줘야지."하고 교실 앞을 바라보니, 오색풍선으로 꾸민 칠판중앙에 '선생님 대들어서 죄송해요'라는 커다란 글씨가 보였다. 그러면 그렇지 너희들이 말은 그렇게 해도 생각은 다 있었겠지! 형철이 때문에 1년 동안 선생님이 얼마나 많은 마음 고생을 하였겠니.

 

9시쯤 6학년 O반 교실에 가보았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화기애애한 분위 속에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형철이도 오늘만은 선생님 옆에서 함박웃음을 웃고 있었다.

 

교실 출입문에는 큼지막한 종이에 다른 반 출입금지. 이곳은 우리 반의 공간이니까. 그래 그 누구도 침범 못하는 너희들만의 공간이지.

 

※ 수필가 이상우씨는 1997년 <문예사조> 로 등단. 저서 「자동차시대에서 휴대폰시대까지」 「엄마이야기 아들 이야기」 「이야기 소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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