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6 17:37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금요수필
일반기사

운전 - 류미숙

류미숙

난 가끔 사이버 카페를 방문한다. 그 곳에 가면 특별히 차(茶)를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눈치 주는 이가 없어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나처럼 끼적거림을 좋아하는 이가 개설한 곳인데, 여러 장르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어 볼거리도 다양하다. 그 중에 나는 테마 릴레이방을 즐겨 찾는 편이다. 테마 방의 주제가 다수결로 정해지고 나면, 자유로운 형식의 글들이 경쟁하듯 올라온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 주제는 '운전'이다. 벌써 여러 편의 체험담들이 클릭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호기심을 갖고 한 편 한 편 읽어본다. 남편한테 도로주행을 연수받다 이혼할 뻔 했다는 내용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을 법한 얘기다.

 

나는 전문운전학원에서 면허를 땄다. 전문 강사의 지도를 받고 코스시험이며, 주행시험까지 합격한 후 1종 면허를 취득했지만, 주차와 오르막길 운전에는 영 자신이 없다. 특히 오르막길 운전은 죽죽 식은땀이 날 정도로 겁이 난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한테 도움을 청했다. 고맙게도 군소리 없이 받아줬다. 늦은 저녁시간 운전연습을 나섰다. 익산공단 부근 오르막길이 우리가 자주 찾던 곳이다. 연습 첫 날, 남편의 음성은 봄꽃처럼 달콤했다. 꼼꼼하게 가르쳐 주려고 애썼지만, 미안스럽게도 나의 운전 실력은 제 자리 걸음이었다. 남편의 목소리는 처음과 달리 천둥처럼 커졌다. 나는 주눅이 들어 급기야 시동까지 꺼트려 버렸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어깨도 뻐근하고, 발뒤꿈치까지 아팠다. 몸 전체 근육이 잔뜩 긴장한 때문이리라. 운동신경 운운하며 연신 쏟아내는 남편의 구박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수모를 잘 견디면 자신 있게 운전할 수 있겠다는 욕심에서였다. 방향감각도 없고, 운동신경도 무딘 사람은 답답해서 더 이상 가르쳐주기 싫다는 남편을 꼬드겨 몇 번 더 운전연습을 나섰다. 그런 덕분에 오르막길 울렁증은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아마도 운전면허증의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던 왕초보 시절 있었던 일이다. 나는 하릴없이 한가한 날이면 시립도서관엘 자주 가곤 했다. 어느 날 유치원에 다니던 막내딸까지 태우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초보운전자가 지나기엔 부담스러운 급커브의 내리막길도 무사히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보고 싶은 책을 골라 다시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에 올랐다. 얼마쯤 달렸을까. 팔십오도 각도로 가파른 오르막길 중간쯤에서 그만 시동이 꺼져 버리는 게 아닌가. 수동변속기를 제때 변속하지 못한 때문이다. 순간 당황했다.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잽싸게 핸드 브레이크를 채웠다. 뒤쪽을 봤다. 다행히 따라오는 차가 없다.

 

무작정 지나가던 봉고 차를 세웠다.

 

사람 좋아 보이는 그 남자에 의해 자동차는 무사히 언덕길을 빠져 나왔다. 연신 고마움을 전하는 나를 뒤로하고, 그 남자는 알 수 없는 미소만 남긴 채 떠났다. 나는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배에 힘을 주고 숨을 골랐다. 자동차는 서서히 움직였다. 그때서야 얼굴 표정이 환해진 딸이 내게 말했다.

 

"아빠한테 다 일러 버릴 거야."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불호령을 내릴게 뻔하다. 자동차 열쇠까지 압수할지 모른다. 나는 딸아이 입을 막을 요량으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녀석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엄마의 실수를 간과하지 않고 아빠한테 고자질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던 유치원생 꼬맹이 딸은 열아홉 살 숙녀가 됐다. 그 동안 나의 운전 실력도 늘었고, 그깟 오르막길쯤은 웃으면서 지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럼에도 운전은 예나 지금이나 조심스럽고 절대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일인 것 같다.

 

여기저기서 꽃소식이 전해오고 있다. 오는 주말에는 남편을 졸라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라도 다녀와야겠다.

 

* 시인 겸 수필가인 류미숙씨는 2003년 월간 '한국시'(수필)와 2007년 '한맥문학'(시)으로 등단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