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절에서 꽃꽂이를 하게 된 것은 내 건강을 걱정하던 친구의 배려 때문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말하지 않고 가끔 나를 절에 데려가곤 했다. 갈 때마다 고적한 풍경에 마음이 끌려 툭하면 파닥이던 가슴이 진정되곤 했다.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다가 경내의 경건함이 조금 부담스러워질 무렵에 절 뒷마당을 돌아 산으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 지붕 끝자락과 맞닿은 하늘이 참으로 맑고 고왔다.
그 산자락엔 꽃꽂이할 소재들이 많았다. 꽃이나 나뭇가지를 꺾어다 내 방에 꽂고 산사의 분위기를 이어 보고자 했다. 작은 풀꽃에서 절 내음을 맡고 파릇한 잎사귀의 움직임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며 자꾸 까무러쳐 가는 심신을 곧추세우곤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그런 내 행동이 왠지 죄스러웠다. 버리고 와야 할 곳에서 오히려 채워 오려고 한다는 생각이 나를 욕되게 하는 것 같았다.
후론 거꾸로 꽃을 사서 들고 갔다. 정성 들여 꽂고 나면 내 마음도 그 꽃을 보는 사람도 함께 즐거웠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공양의 의미를 돋보이게 했다. 공양 중에 꽃 공양이 제일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에게 꽃 꽂기를 부추겼다. 법당에서 시작한 꽃꽂이는 나한전, 관음전, 극락전, 지장전으로 범위를 넓혀 갔고 꽃꽂이를 위한 성금이 점점 많아져 갔다. 큰 행사 때에는 몇 날을 꽃과 씨름하며 파김치가 되도록 몰두했다. 그리고는 며칠씩 앓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만은 보람으로 충만했다.
나뭇가지를 들여다보면 살려야 할 선과 잘라야 할 선이 보인다. 어느 방향으로 어느 만큼을 살리고 자르느냐에 따라 작품의 윤곽이 다르다. 꽃꽂이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구상하는 대로 자르다 보면 어느 것은 너무 아까운 것이 있다. 물론 꽃꽂이를 하기 위한 절화용이어서 마음껏 자르는 것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물을 빨아 올려가며 생을 이어가는 생명 아니던가. 그러기에 잘려나가야 하는 것이 있을 땐 가위질이 망설여진다. 그러나 잘라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잘라야만 작품이 나온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잘라내야 할 것들로 진통을 앓듯, 내 삶이 이어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놓고 마음을 앓을 때가 참 많았다. 꺾어지고 시들고 찢어져서 버려야 할 것들은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어떤 선을 살려야 하는 이유로 정말 멀쩡한 가지를 쳐 내야 했을 때처럼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버리고 살아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누구를 위한 삶인지 회의를 느끼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런 일들이 내 삶의 곳곳에 딱딱한 옹이를 만들어 갔고 그 옹이들은 내 마음 깊숙이 어둠을 깔고 숨어 있다가 가끔 튀어나와 벌겋게 성을 내곤 했다.
작품으로 탈바꿈한 꽃과 탐,진,치(貪,瞋,癡)를 버리라는 목탁소리 속에서 지내다 오는 날엔 벌겋던 상처 색깔이 달라져 갔다. 잘려나갔기에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사실과 잘린 것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한다는 이치가 손끝에서 이루어져 가면서 소중한 물건인 것처럼 보듬고 있던 응어리들이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어 갔다.
산사의 풍경소리와 목탁소리와 꽃꽂이. 화사한 봄날 마당에 내려앉는 햇살과 한여름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나뭇잎 뒹구는 소슬한 가을 저녁나절의 고즈넉함과 뒷산 소나무가 꺾어지는 겨울 풍경들을 보고 들으며 꽃을 꽂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 앉아 갖가지 꽃물에 흥건히 젖는다.
- 수필가 김재희씨는 ‘수필과비평’,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수필집 ‘그 장승을 갖고 싶다’‘꽃가지를 아우르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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