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들여다보기 참 좋은 가을입니다. 가을은 자기 고독의 색깔을 드러내기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철학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가을은 익어가는 계절이요. 숙성의 절기입니다. 들길 지나 산길로 나서면 나뭇잎들은 푸른 빛 떠나보내고 잎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단풍나무 잎은 능금 빛으로 물들고 감은 어느덧 홍시로 숙성해 변화의 계절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을 앞에 옷깃 여미며 한 해의 삶을 생각하는 가슴 속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나이의 무게를 의식하게 되면 세월의 속도감이 심장을 건드리는 것 같습니다. 늦가을 대기처럼 마음은 쓸쓸하고 애잔한 느낌입니다. 그래 더 겸손히 조신하게 살지 못했구나 싶어지기도 합니다. 인생의 철듦은 꼭 나이와 비례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제나 너그럽지 못한 생각들 앞에 마음의 얼굴이 붉어집니다. 순간 마음의 옷을 벗고 내가 상처를 입혔던 사람들을 만나 따끈한 국물에 소주라도 한잔 권하면서 마음의 온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내 안의 나에게 묻게 됩니다. 하루하루의 시간을 생각 없이 소비하지는 않았는가? 하고.
밤새 / 뒤척이다 / 숲길에 나서니 / 초입 길 / 가로등이 / 벌건 눈으로 / 내려다본다. / 갑자기 / 부끄러워지는 마음 / 나만 힘들게 / 사는 게 / 아니라는 것. 나의 시집 〈〈시목詩木〉〉에‘부끄러움’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던 시입니다. 그리고 어느 독자가 읽고서 책상 위에 세워놓을 수 있는 ‘그림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른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공원길 걸으면 밤새 한숨도 못 잔 가로등이 충혈 된 눈으로 내 모습을 봅니다. 세상 만물 모두가 편하게만 지내는 것 아니오 사람만 힘들게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순간입니다.
대지마을 뒷산을 걷다보면 몇 년 전 태풍으로 인해 뿌리 뽑힌 나무가 쓰러져 다른 나무에 얹혀 지내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쓰러진 나무가 다른 나무에 얹혀 있는 모양이 한자의 효孝를 상징하는 꼴 같습니다. 효는 늙은이老를 아들子이 업고 있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의 효는 늙을 노老 아래 나무 목木을 했다고 해도 그냥 효孝로 인정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아! 나무도 생명의 아픔을 아는구나!’ 하는 가족애가 느껴졌습니다.
지난 주, 문단의 몇 선배와 만났습니다. 그때 한 시인이 ‘존속 살해 사건’이 세계 각국 평균보다 우리나라가 두 배나 높게 발표되었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와 형을 함께 숨지게 한 범인은 돈 때문에 그랬다고 했습니다. 많은 문제의 원인을 거슬러 오르면 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 죽이는 일을 심각하지 않게 생각 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시인의 말을 듣고 나는 어린 나무가 죽어가는 늙은 나무를 업고 있는 숲속 효목孝木의 꿈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자연 속에서의 나이 질서와 사람 사는 길을 읽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참 많이 아픕니다. 그런데 정치인만 있고 정치는 안 보입니다. 원로 분도 그립습니다. 가랑잎 구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영혼의 허기를 느끼지 못한다면 시인이나 펜을 쥔 작가로서 영혼의 감각이 무뎌진 것 아닐까요. 가을나무들은 한 해가 간다고 체질개선을 하면서 하나의 나이테를 긋기 위해 뿌리 아픔을 앓고 있는데….
* 수필가 김경희씨는 〈월간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내 생명의 무늬〉, 시집 〈시목 詩木〉, 저서〈문학의 이해와 수필의 길〉 등이 있으며, 현재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전북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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