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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밥

▲ 박귀덕

초대장도 없이 방문한 손님이다. 반기는 이 없어도 태연하다. 자기 자리가 아닌데도 틈만 보이면 옆자리에 걸터앉아 팔을 늘어뜨린다. 환영받지 못한 셋방살이다. 다른 화초들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모셔놓고 제때 물을 주며 보살펴 주다가도 잠깐의 실수로 생을 마감하는데, 유독 괭이밥은 신경을 써주지 않아도 자기의 영역을 확장해나간다.

 

바람을 좋아하는 난의 경우는 창문 곁에 반그늘을 지어주어야 하고, 기왓장에 심어진 바위손은 음침한 그늘에 두고 항상 물이 마르지 않게 관리해야한다.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도 한해 겨울을 지나면 이별을 고하는 화초가 있다. 작년 겨울에도 20년 넘게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나누어주던 문주란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꽃대를 올려 하얀 꽃을 피워놓고 자랑스러워 할 때면 거실과 안방까지 향기가 그윽했다. 그 꽃향기가 그립다. 말라비틀어진 잎과 뿌리를 바라보며 서러운 작별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어느새 그 자리에 괭이밥이 터를 잡았다. 심지도 않은 풀이 제멋대로 화분을 점령하니 자꾸만 문주란을 죽인 원흉으로 생각되어 진다. 억울하다고 항변하겠지만 애지중지 아끼던 문주란을 생각하면 그 빈자리를 점령한 괭이밥이 곱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괭이밥이 풀이 아닌 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유리 화분 받침대가 1m는 족히 되는데 줄기 몇 가닥을 바닥에 축축 늘어뜨렸다. 그 모양이 아름다워 그냥 두었다. 일부러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른 것도 아닌데 분재작품 같아 흡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줄기에 노랑꽃이 피었다. 그 줄기에서 꽃까지 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한낱 잡초로만 생각했었는데 횡재를 한 기분이다. 언제나 화초 곁에 자리를 잡고, 꽃나무와 뒤엉켜서 꽃잎을 해칠 것 같아 뽑아버려도 또 생기는 잡초였다. 그런 풀에서 예쁜 꽃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창문을 여니 갈바람이 햇볕을 몰고 왔다. 물뿌리개로 목을 축여주니 꽃 한 송이가 나를 쳐다보다가 숨어버린다. 향기는 미미하나 빛깔이 곱다. 이른 봄날 초가집마당에서 어미닭을 쫒아가는 노란병아리를 닮은 색이다. 만져보고 싶어도 하도 작고 가냘퍼서 얼른 손을 내밀어 잡아 볼 수 없다. 길섶에 지천으로 자라나는 풀이라서 귀히 여기지 않았고, 그 꽃의 아름다움도 눈에 띄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꽃잎이 아기자기하게 보인다. 다섯 꽃잎 속에 꽃술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도 치우치 않고 제 위치에 당당하게 자리했다. 이렇게 작은 꽃도 조형미를 갖추고 한 세상을 살고 있다. 작아서 더욱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또 뽑힐까봐 미리 겁을 먹고 살짝 숨는 모습은 마치 촌색시를 닮았다. 이렇게 한낮에만 예쁘게 피는 꽃인 줄을 예전에는 몰랐었다. 갑자기 괭이밥이 고향처럼 친숙하게 다가온다. 지난날 어머니는 내 손톱에 봉숭아꽃을 피우셨다. 봉숭아 꽃잎과 담장 밑의 괭이밥을 뜯어다가 백반을 넣고 막자로 꽁꽁 찧어 햇볕에 거들거들 말려놓았다. 그것을 어슴막에 아주까리 잎에 싸서 손가락에 칭칭 감아주셨다. 그렇게 하룻밤을 지나면 그다음 날 아침에 손톱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꽃잎처럼 예뻤다.

 

매니큐어가 생기기 전 소녀들의 손톱 미용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할 때 사용되었고, 남에게 도움을 주고도 자신의 공덕을 들어내지 않고 봉숭아꽃에 묻혀 있을 줄 아는 겸손함이 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인내하며 살다보면 언젠가는 알아주는 이가 있어 인정받는 날이 온다는 믿음을 주는 꽃이 괭이밥이다.  

●2004년 ‘수필과비평’신인상으로 등단. 수필집 ‘삶의 빛 사랑의 숨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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