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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결핍

▲ 박세정

잎사귀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는 연둣빛이 예뻐서 오래 전부터 뱅갈고무나무를 집에 한 그루 들여 놓고 싶었다. 작년 봄에 화단을 정리하다가 맘을 먹고 중간 크기의 화분에 뱅갈고무나무를 심어 들여왔다. 햇볕이 잘 드는 거실 창가에 자리를 잡아 주고 시간이 날 때마다 바라보았다. 뱅갈고무나무가 집에 들어온 뒤, 반려동물이라도 생긴 양 기분이 우쭐해졌다.

 

작년 여름, 키 큰 뱅갈고무나무를 집으로 배달시켰으니 받으라는 전화가 남편에게서 걸려왔다. 그렇잖아도 그 나무를 한 그루 더 두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외롭게 베란다를 지키고 있는 주필나무 옆에 두면 좋을 것 같았다. 집으로 배달된 나무는 정말로 컸다. 그 나무가 들어온 날, 남편은 밤 늦도록 베란다에 불을 환히 밝히고서 유심히 관찰했다고 했다. 볼수록 듬직하니 맘에 든다면서 사무실에도 한 그루 두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거실 창가 작은 뱅갈고무나무와 비교하면서 저 나무가 이 나무냐며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올 봄, 작은 뱅갈은 가지 끝에 새 잎을 틔우려고 뭉툭하게 부푼 혹을 올망졸망 여럿 달고 있었다. 며칠 지나니, 건드리면 생채기가 날 것 같은 작고 여린 새 잎들이 피어났다. 기특하고 신기했다. 그렇게 피어난 잎들이 제법 커서 작년부터 달고 있는 잎사귀와 그 크기가 비슷해졌다.

 

베란다를 청소 할 때마다, 듬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키 큰 뱅갈고무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가지 끝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작년 그대로다. 남편은 아마도 물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뒤 물을 흠뻑 부어 주었다. 가지 끝까지 잎맥을 따라 시원스럽게 물이 이동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영양제도 적당량 흙에 묻어 두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곁을 지키고 있는 주필나무는 봄부터 지금까지 새 잎을 풍성하게 피우고 있는데.

 

지난 주말 뱅갈고무나무에 물을 주면서 거실에 있는 딸아이에게 물었더니‘애정결핍’이란다.

 

“엄마가 쟤만 예뻐했잖아요? 쟤 앞에서만 서성거렸고 잎사귀도 자주 만져주었잖아요.”

 

모녀간의 대화를 엿들은 주필나무가 아이의 말에 동의하는 듯 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의젓하게 웃고 있었다.

 

‘애정결핍이라, 애정결핍!’

 

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런 것 같았다. 베란다 창가에서 우리 집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뱅갈고무나무는 거리를 두고 보아야 멋스러웠다. 그래서 거실이나 주필나무 옆에서 바라보았다. 키 큰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잎사귀들도 팔을 뻗어 닿기에는 너무 멀어서 만져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내 행동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아이의 말을 듣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앞에 서서 잎사귀며 가지 끝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이도 알고 있는 그 사실을 왜 나는 몰랐을까?’ 몇 년 전, 화초를 처음 가꾸기 시작했을 때 알려 준 화원아저씨의 인상적인 말씀이 떠올랐다.

 

“간단해요. 물 잘 주고, 햇빛 잘 보게 하고, 바람 잘 들게 하면 돼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관심이에요.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꼭 하세요. 그래야 걔들도 사랑 받는 줄 알고 잘 자라거든요.”

 

‘나무도 사람과 똑 같구나!’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이들이 더 밝고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부모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그 간, 저 홀로 묵묵히 세월을 견뎌냈을 뱅갈이 짠하게 여겨졌다. 애정결핍을 느끼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더 많은 눈길과 사랑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2주일쯤 지났을까. 오늘 큰 뱅갈을 자세히 보니 가지 끝에서 새 잎이 하나 돋아나고 있었다. 무척 신기했다. 충분한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 뱅갈이 보답을 한 것 같았다.

 

△수필가 박세정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 현재 KT전주지사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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