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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버티며 사는 인생

한성덕
한성덕

어느 덧 격동과 파란의 세대를 살아온 막내가 환갑을 맞는 돼지 해. 그것도 황금돼지 해인 기해년의 태양이 아파트 창 너머로 활짝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살고 있는 우아동 럭키아파트는 전주시내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비껴 앉은 끝자락에 있다. 그야말로 오지중의 오지다.

그래도 아파트 뒤편 저 멀리서 올망졸망한 진안고원의 산들이 손짓한다. 그 유혹에 사로잡혀 아파트를 벗어나면서 곧바로 고향 쪽 도로로 들어서 시골집까지 자동차로 50분 거리이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 50분을 달려가는 동안 꼬불꼬불한 산길 도로를 오르내리며 느끼는 스릴과 창밖의 풍광을 즐기는 재미에 취하다보면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무주가 고향이 아니라면 그 기분을 어찌 알겠는가? 나만이 갖는 맛이요, 즐거움이다.

아파트에서 전주역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전주역 바로 옆에는 30층짜리 오피스텔 아파트와 함께 대형마트가 들어선다며 공사가 한창이다. 그 대형마트가 1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이 좋아서인지 지날 때마다 설렌다. 그리고 전주역도 새로 건축되며 그 뒤쪽 드넓은 뜰에는 새로운 주거지와 공원으로 탈바꿈한다는 낭보가 들린다. 나와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무척 반가워서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거린다.

몇 년 전부터 전주역 앞거리가 달라졌다. 관광객이 첫 발을 딛는 전주역 앞 약1km 가량의 첫 마중 길은 고향의 거리처럼 따뜻하게 맞아준다. 도로양쪽에는 느티나무가 멋을 뽐내니 살아 숨 쉬는 거리공원이 되었다. 몇 십 년이 지나면 아름드리나무로 가득한 싱가포르의 거리를 방불케 할 것이다. 차들은 그 사이의 공원 양쪽도로를 타고 서행한다. 창가에는 거리의 작은 것들이 낭만을 이루고 도심 속 허파가 되어 꿈틀거린다.

크리스마스 전부터 공원은 초롱초롱한 야등으로 출렁거린다. 연인들은 손을 맞잡고 추억을 담아내고 찾는 사람들의 가슴마다 깜박깜박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달라지는 것들이 많아서인지 오지의 럭키아파트가 점점 좋아지고 사는 맛도 매일처럼 새롭다.

목회에서 조기은퇴하고 지금은 보금자리를 ‘럭키’(lucky)아파트로 정한 것 자체가 복이다. 이름처럼 여기저기서 ‘행운’이 샘솟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그 행운이 안겨주는 희망을 단단히 붙잡고 끝까지 럭키아파트에 살련다. 앞으로 그 주변에 더 좋은 일이 많아질 것 같아서 버티고 살아 볼 참이다. 버틴다고 하니까 얼핏 씨름의 ‘버티기’ 생각이 난다.

씨름이라야 고작 초등학생시절 장난기서린 씨름이어서 씨름다운 씨름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름하면 이만기가 떠오른다. 씨름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게 버티기라고 한다. 실제경기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것은 공격보다 버티기라니 알만하다. 다리에 힘을 잔뜩 줘서 상대공격에 안 넘어져야하고, 두 팔로 샅바를 굳게 잡고 잘 견뎌내야 한다. 팔다리에 쏠리는 힘은 배와 팔뚝에서 땀방울을 만들고, 장딴지까지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보았다. 서로가 힘껏 버티다가 약점이 느껴지면 후다닥 기술을 걸어서 쓰러뜨린다. 약점으로 무릎을 꿇으면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하루하루 버티고 사는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작년에도 잘 버텼으니, 올해도 잘 버티고 살아야지’하는 생각이다. 무엇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굳건히 살아온 게 감사해서다. 후회 없는 인생이 되려면 잘 버텨야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 한성덕 수필가는 은혜림교회 목사를 은퇴하고 <대한문학> 으로 등단했다. 현재 신아문예대학에서 수강 중이며 신(信).망(望),애(愛)로 버무려진 성직자 수필집 <단, 하루만이라도>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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